[사설]철퇴맞은 국회 날치기

  • 입력 1997년 7월 17일 20시 48분


국회의 날치기 입법에 헌법재판소가 쐐기를 박았다. 지난해 말 안기부법 등 5개 법안의 여당단독 날치기 처리가 국회의원의 법안심의 표결권을 침해한 불법이라는 헌재결정은 잘못된 정치에 대한 철퇴에 다름아니다. 대화와 타협없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파행입법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라의 기본법인 헌법마저 제대로 된 심의보다 날치기 등 변칙 파행으로 개정하곤 했던 우리 헌정사에 비춰볼 때 이번 결정이 지닌 의미는 크다. 자유롭고 활발한 토론없이 다수당이 숫자의 힘에 의존하거나 소수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국회에서 민주주의는 절대 싹틀 수 없다. 우리 국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성숙한 의정(議政)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여야의 극한대립으로 의사당이 폭력으로 얼룩지기 일쑤였고 주요법안은 날치기 등 변칙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헌재의 결정은 이같은 구태(舊態)가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게 하자는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기도 하다. 이번 헌재 결정으로 새롭게 파생되는 문제가 안기부법의 재개정 여부다. 헌재는 안기부법의 날치기처리가 위법이라고 판정하면서도 법의 무효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야당은 날치기의 위법성이 인정됐으니 안기부법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여당은 헌재가 법의 효력을 인정한 만큼 재개정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여야가 자칫 이 문제를 또 하나의 정쟁거리로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현행 안기부법의 정당성은 헌재의 결정으로 분명히 훼손됐다. 따라서 어떤 형식으로든 재심의 절차를 밟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법안심의와 표결에서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았음이 최고 헌법기관에서 판정이 났는데도 그 법을 그대로 둔다면 법운용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과 잡음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사법적 심판까지 받게 된 국회의 변칙운영을 정말로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여야는 절차상 하자가 없는 법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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