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 칼럼]선생님에게 사랑을

  • 입력 1997년 7월 4일 20시 01분


선생님이 부르면 앉아 있다가도 즉시 일어나고 음식이 입 안에 들어 있으면 땅에 뱉고 대답하라는 것이 우리 전통사회의 스승에 대한 예절이었다. 나보다 먼저 태어나 나에게 귀한 가르침을 베푸는 분을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으로 모시라는 뜻이었다. 학부모가 자식의 선생님을 공경하는 태도도 각별했다. 자식에게 삶의 도리와 지식을 가르치는 분이 선생님이기 때문이었다. ▼ 학부모의「촌지 유혹」 ▼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다. 대학교수는 아직 그 지식에 어울리는 만큼의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는 편이지만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교사는 가르치는 직업에 어울리는 만큼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존경을 받기로 하자면 자식들의 철없는 시절을 맡아 가르치는 저학년 선생님들이 더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생님이 단순히 상급학교 입시를 위한 도구적 지식이나 전달하는 박봉(薄俸)의 직업인으로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 스스로 그런 자조(自嘲)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10명의 선생님 가운데 단 1명만이 자신의 봉급수준에 만족하고, 선생님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는 전체의 절반가량이 불만, 만족하는 사람은 겨우 7명 가운데 1명이라는 조사도 있었다. 그런데도 많은 선생님들은 선생님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고 한다. 아이들의 맑고 초롱한 눈망울에 세상 근심 모두 묻고 지내는 분들이 선생님들이다. 그런 선생님들에게 요즘 모진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감사원이 촌지신고센터를 만들어 학부모들의 「고발」을 부추기고 교육당국이 촌지받은 선생님을 철저히 가려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악덕교사」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줄을 잇는다. 한 여선생님의 촌지장부는 헌신과 사명감으로 가르침에 임하는 많은 선생님들과 교직은 성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더 많은 학부모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했다. 스승의 날이나 자식이 학년을 마치고 진급할 때 선생님에게 고맙다는 심정을 표시하는 작은 선물을 드리는 것이 꼭 근절해야 할 사회악은 아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그런 따뜻한 정표조차 주고 받지 못하는 세상이란 생각만 해도 삭막하다. 선물을 못 드릴 형편이면 선생님의 은혜를 가슴 깊이 간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속깊은 선생님은 눈빛만으로도 그 마음을 안다. 이 아름답고 귀한 풍경을 촌지라는 이름으로 오염시킨 장본인은 학부모들이었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버릇없이 아이들을 놓아 기른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자기 자식 기 안죽게 잘 봐달라고 봉투를 들이밀면서 일부 선생님의 양심을 무너뜨렸다.과잉보호속에서 왕자처럼 자란 아이들이 선생님의 꾸중을 미움으로 곡해하고 학부모들이 지레짐작으로 돈으로 선생님들을 매수하러 나선 결과가 충격적인 촌지장부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 존경해야 할 聖職 ▼ 돈봉투를 주면서 선생님을 괴롭히고 돈봉투를 받았다고 또 선생님을 괴롭히는 것은 선생님에 대한 학대다. 40만 선생님들 중 소수 사회악에 물든 교사들의 사례를 침소봉대하여 선생님 모두를 불신하는 일은 삼가야 마땅하다. 선생님들은 학부모와 학생들의 신뢰와 존경에 기대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하는 어처구니없는 패륜도 실은 학부모가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는 풍토에서 자란 독버섯이다. 선생님을 앞다퉈 고발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사랑의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학교촌지문제의 해결은 선생님들 스스로에게 믿고 맡기는 것이 좋다. 대신 학부모들은 내자식 이기주의를 버리고 적어도 선생님만이라도 존경받는 분으로 아이들 가슴 속에 오래도록 살아 남게 해야 한다. 선생님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결코 돈봉투가 아닐 터이다. 김종심(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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