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시장에 나가 재첩국거리를 몇 공기 샀다. 알맞게 끓을 때 부추를 송송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조금 넣으면 감칠맛 나는 재첩국이 된다. 뽀얀 진국에다 갖은 양념을 해서 만든 재첩찜은 생각만해도 입안에 침이 괴는 별미식이다.
요즘 시장에 나도는 씨알이 잘고 윤기가 없어보이는 재첩은 거의가 중국산이다. 30여년 전 낙동강 하류에서 잡아올린 재첩은 노르스름한 빛깔의 윤이 나고 씨알도 굵었다.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낙동강은 조각배 가득 재첩을 건져 올린 뱃사공의 구성진 노랫소리와 재첩을 사고파는 아낙네들의 외침소리로 온종일 출렁댔다.
학교가 파한 오후면 동네 개구쟁이들은 조개를 주우러 강가로 몰려가곤 했다. 강물에 들어가 모래를 움겨쥐면 손가락 사이로 감겨들던 까칠하고 매끄러운 조개알갱이의 감촉은 지금 생각해도 간지럽다. 정신없이 조개를 잡다보면 어느새 긴 여름해도 지고 만다. 저녁놀에 벌겋게 물든 강물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서야 무섬증을 느낀 아이들은 코고무신을 찾아신고 서둘러 마을로 돌아오곤 했다.
어레미로 재첩을 까부르는 소리가 온 골목에 퍼질 때면 마을은 온통 구수한 재첩국 냄새로 번져갔다. 어머니는 캄캄한 새벽 어둠을 뚫고 양동이 가득 재첩국을 이고 나가셨다. 미명속에 아련하던 그 소리 『재첩국 사이소오―』. 순이 언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용만 오빠가 대학을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재첩국 덕이었다.
저녁 놀에 붉게 물들던 황금강. 건져도 건져도 끝없이 살아나던 재첩과, 잡아도 잡아도 한없이 올라오던 금빛 잉어는 강을 삶의 터전으로하여 살아가던 그 동네 사람들의 공장이요 논밭이었다. 도깨비방망이같이 신기하기만 하던 요술의 강, 낙동강. 이제 조개는 죽은 지 오래고 눈알이 붉고 등굽은 물고기가 살고 있는 괴물의 강이 돼버렸다. 강변엔 시커먼 연기를 뿜어올리는 공장이 빽빽히 들어서고 어레미로 재첩을 치던 정님이네 부엌은 아파트 주차장에 묻혀 버렸다.
한사코 『삼천포에서 잡은 청어는 이 맛이 아니었니라. 참말로 달았니라』 하시던 할머니처럼 어느새 나도 『낙동강에서 나온 재첩국은 이 맛이 아니었다』고 우기는 늙은이가 돼버린 자신을 생각하니 쓴웃음이 난다. 물질 문명의 풍요와 편리함은 결국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을 앗아간 대가인가.
구인숙(경남 울산시 울주군 농소면 중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