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독자로 갖기까지는 40년이 필요했다. 다음주 시집 「빠지지 않는 반지」(문학과 지성사)를 펴내는 김길나씨.
『문학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작정한 것은 10대 소녀시절. 그러나 지금 나이는 쉰여섯이다.
『언어의 유희, 부질없음에 사로잡혀있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침묵수업을 한답시고 7년간은 아예 시를 쓰지 않기도 했지요』
문학을 사랑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문학수업을 받지 않았다. 가슴속에 젊음의 불이 끓던 시절, 그는 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천주교 선교사로 활동하며 「신과 삶과 죽음 안에서 침묵하면서도」 가슴속에는 시가 여물었다.
그의 시는 격정적이다. 온갖 고정관념에 제 머리를 부딪는 젊은이의 것처럼 예측불허다. 상상력의 지평은 지상을 넘어 저 우주로 향해 있다.
「무시무시한 중력의 블랙홀을 방금/빠져나왔다 시간만이/끝까지 살아남아/0時는/참을 수 없이 뜨겁다/참을 수 없이 무겁다/영원의 특이점이므로//우주처럼/시간이 점 하나로 응축된다/한 처음이 새롭게 폭발한다//끝인지 시작인지 아무도 모른다」(0時)
혼자 쓴 시들을 바라보는 일은 너무 고독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95년 자비로 첫 시집 「새벽날개」를 펴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리라고 여겼던 시집이 출간된 뒤 어느날 문학과 지성사에서 원고청탁을 해왔다. 시를 받아본 출판사는 경력란에 적힌 그의 출생연도가 「오기(誤記)」일 것이라고 짐작할 정도였다.
『나이 먹는다고 상상력까지 늙지는 않아요. 제 출발이 결코 이르지는 않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