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축제/스웨덴 하지축제]20시간 지속「盛夏」축하

  • 입력 1997년 6월 24일 08시 10분


좀처럼 해가 저물지 않는 6월하순의 스웨덴. 오전2시에 날이 밝아 밤10시까지 환하다. 1년중 낮이 가장 긴 하지(6월21일)를 전후로 한 3일동안 스웨덴은 전국 곳곳이 축제로 떠들썩하다. 길고 어두웠던 겨울의 외투를 벗어던지고 성하(盛夏)의 햇빛을 축하하는 「하지축제」다. 이 축제를 가장 성대하게 치르는 곳은 수도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3백20㎞ 떨어진 달라나 지방. 이중에서도 실얀호수 주변 소도시들인 모라 렉산드 래트빅 등이 유명하다. 하지 전날인 지난 20일 오후5시 모라의 보네스 마을. 마을주민들과 인근 봄헤스 엘브돌렌 등에서 온 사람들이 울긋불긋한 전통의상을 차려 입고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중년남자들은 청색과 아이보리색 모직 정장을 차려 입었으며 청년들은 가죽 앞치마인 「심파」를 둘렀다. 여자들은 줄무늬 앞치마와 체크무늬 스카프로 된 전통의상을 입거나 머리에 화환을 썼다. 마을 한가운데의 넓은 풀밭에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이자 전통악기 연주자가 쇠뿔로 만든 피리를 불며 하지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자작나무 껍데기로 만든 길다란 전통악기인 「네벨 루르」와 「스펠 피판」연주, 교회 합창단의 민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민속춤…. 봄헤스 마을에서 온 5∼8세의 어린이들이 앙증스러운 동작으로 「예데비공로트」「뉴델안데쉬」 등의 민속음악에 맞춰 춤을 추자 풀밭을 에워싼 2천여명의 관람객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는 등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드디어 하지축제의 절정. 길이 15m의 긴 장대기둥인 「마이스통」을 세우는 순서다. 이 기둥에는 잎이 무성한 자작나무 잔가지가 감겨지고 갖가지 들꽃으로 엮은 화환이 달려있다. 마을 장로와 악단이 앞장서 마이스통을 풀밭의 중앙으로 들여왔다. 힘센 장정들이 나와 X자 모양의 작대기로 마이스통을 떠받쳤다. 구경꾼들이 「오쉬! 오쉬!」하는 구령을 함께 넣는 동안 마이스통은 조금씩 푸른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마침내 풀밭 중앙에 마이스통이 뿌리를 박고 서자 주민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마이스통 주변으로 몰려나와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하지축제에서 마이스통을 세우는 의식이 시작된 것은 바이킹시대. 원래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모든 나라에서 즐기던 풍습이었지만 대부분 사라지고 달라나 지방에서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마이스통을 땅에 꽂고 주위를 돌며 춤을 추는 것은 원래 풍작을 축하하고 기리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하지축제 진행을 맡은 룸스덴 쉘(34)은 『지금은 그런 뜻보다 주민들의 화합을 상징하는 의미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풀밭 한쪽에는 주민들을 위한 다과상이 마련되어 있다. 주민 조안나 스웬손(62·여)은 『하지축제때는 「헤링」이라고 불리는 발틱산 청어절임과 햇감자가 주 요리』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보드카의 일종인 「스납」이라는 술이 곁들여진다. 모라에서 약 80㎞ 떨어진 소도시 렉산드에서도 하지축제가 성대하게 열렸다. 이곳은 스웨덴에서 가장 먼저 지난 19일 마이스통을 세웠다. 이어 20, 21일 각 마을마다 마이스통이 세워졌다. 주민들은 밤9시경부터 다음날 오전2시까지 간이무도장이나 호수가의 널찍한 공간에서 왈츠 함부 쇼티스 등 빠르고 경쾌한 곡에 맞추어 춤을 추며 밤을 지샜다. 하지축제가 시작되면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3일동안 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는다. 주말별장이나 호수가 캠핑촌으로 떠나는 차량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람들이 가장 활발하고 거침없어지는 때도 이때다. 그런 탓인지 하지축제를 배경으로 한 예술작품도 많다. 극작가 스트린드베리의 희곡 「줄리」가 대표적이다. 축제 전야에 우연히 하룻밤을 함께 지내게 된 콧대높은 귀족처녀 줄리와 하인 장의 얘기. 하지축제가 끝나면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9월부터는 해가 오전 9시에 떠서 오후2시면 지는 기나긴 겨울이 시작된다. 하지축제는 얼마 안있으면 사라질 빛이 못내 아쉬운 사람들의 축제이기도 하다. 〈모라·렉산드(스웨덴)〓김희경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