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 북한

  • 입력 1997년 6월 19일 19시 29분


본보가 어제 단독입수 보도한 북한 정치범수용소 비디오테이프가 숨을 멎게 하고 말을 잊게 한다. 말이란 이런 때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실감한다. 너무도 충격적인 참상 앞에 사람이 사람을 핍박할 수 있는 한계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심지어는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죄스럽다는 대상 모를 배신감과 절망감에 몸서리가 쳐지기도 한다. 그곳은 분명 사람이 살 수 있는 곳, 사람이 살아야 할 곳이 아니다. 허허벌판에 땅을 파고 비닐을 덮어 겨우 비바람을 피하거나 철조망이 쳐진 황량한 공터에서 엄한 감시를 받으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극한적인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다. 짐승처럼 방목되고 있다지만 짐승에게도 뜯어 먹을 풀밭은 마련해주는 것이 인간이다. 북한 지배자들은 그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마저 버렸다.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회령시 근처 농가의 참상도 눈뜨고 볼 수 없다. 칼로 잘게 썬 풀 한 움큼에 밀가루 두 숟가락을 넣어 끓인 풀죽이 네사람의 한끼 식사라면 누가 믿겠는가. 바가지에 절반가량 담긴 밀가루가 네식구 보름치 식량이라고 한다. 북한 식량난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처럼 극에 달했으리라고는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 굶주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눈으로 확인됐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우리 북녘땅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분하고 부끄럽다. 주민들을 정치범수용소에 가두고 굶주림에 허덕이게 하면서도 주체조국이니 위대한 영도자니 떠들어대며 걸핏하면 전쟁위협이나 일삼는 북한 지배계급이란 어떤 인간들인가. 북한에는 최소한 12개 정치범수용소에 20만명 정도가 「교화」라는 명목으로 수용돼 있다고 전해진다. 그들에겐 인권이라는 말조차 사치스럽다는 각종 보고가 있다. 군량미가 최소한 6개월분 1백만t 이상 비축돼 있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고도 주민들은 지금 저 극도의 굶주림에 내몰리고 있다. 여기서 지금 우리가 북한주민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분명해진다. 우선 인도적인 식량지원은 계속하되 이것이 북한 곳곳의 주민들에게 적은 양이나마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북한 당국으로부터 확실한 보장을 받아내야 한다. 동포들이 다 굶어죽고 난 뒤 통일은 해서 무얼 하겠는가. 두번째는 북한주민의 참담한 인권상황을 국제기구에 고발하고 제소하는 동시에 북한 당국에 인권상황의 개선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지금까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또는 자료가 없거나 압력을 행사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해왔던 북한 인권문제에 더 이상 눈감고 있을 수는 없게 됐다. 저들에게 핍박받고 있는 주민들은 바로 우리 형제자매들이다. 통일이 된 뒤 그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를 말하기 위해서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북한동포를 구해야 한다. 그들을 저 지옥에 저대로 놓아둬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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