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총련과 화염병시위

  • 입력 1997년 6월 9일 20시 47분


「몰로토프 칵테일」. 술이름이 아니다. 화염병의 별칭이다. 화염병에 왜 러시아 혁명지도자인 몰로토프의 이름이 붙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공업계 학생이었던 몰로토프가 처음 화염병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데다 화염병속의 휘발유 색깔을 보고 연상해 낸 합성어가 아닌가 싶다. 몰로토프는 10대 학생시절부터 비합법 폭력투쟁을 주도했고 혁명후에는 소련의 권력 핵심부에 있었다. 50년대에는 외무장관을 지냈다 ▼명칭이야 어떻든 화염병은 급진 좌경사상과 도시폭동이 낳은 산물이다. 때로는 군사무기로도 쓰였다. 1939년 日蘇(일소)충돌을 일으킨 노몬한사건 때 일본관동군은 대(對)전차무기가 부족하자 화염병으로 소련군 전차를 공격했다. 우리나라에서도 6.25 당시 북한군의 소련제 T34전차를 저지하기 위해 특공대원들이 화염병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화염병은 주로 도시 게릴라전 때 사용하는 무기로 방화 파괴가 목적이다 ▼우리나라 대학가 시위에 화염병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83년이었으며 그 다음해부터 사용이 본격화했다. 그로부터 해마다 많을 때면 20만∼30만개씩의 화염병이 투척되고 부상 경찰관만도 연간 수천명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휘발유에 에나멜 페인트와 설탕을 혼합, 사제폭탄의 위력과 맞먹는 「강화 화염병」까지 마구 던지고 있다. 시위가 아니라 폭동에 가깝다. 오죽했으면 시위진압에 투입됐던 한 의경이 폭력시위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투신자살을 기도했을까 ▼경찰은 최근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법개정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이미 국회에는 지난해 연세대 사태 직후 마련한 개정법률안이 계류돼 있다. 일본의 경우도 60년대 美日(미일)안보분쟁을 겪으면서 학생들의 무차별 화염병 시위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화염병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중형으로 다스림으로써 화염병시위를 뿌리뽑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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