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유종호/자제하고 난국에서 배우자

  • 입력 1997년 6월 8일 19시 58분


『국가가 개인에게 모든 부정(不正)을 금하는 것은 그것을 제거하고자 해서가 아니다. 소금이나 담배처럼 부정을 독점하기 위해서다. 이전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전시에 충격적으로 확인하게 되었다』고 프로이트는 적고 있다. 1차대전중 전쟁에 관해 쓴 글에 보이는 대목이다. 전쟁의 끔찍함을 목도하면서 한 인본(人本)주의자가 국가의 윤리성에 대해 토로한 감회다.

▼ 안이하게 뛰어든 「문민」 ▼

해방 직후 가장 많이 사람 입에 오르내린 유행어에 「친일파」 「민족반역자」와 함께 「모리배(謀利輩)」란 것이 있었다. 그후 「부정 축재자」로 대체된 말이다. 이러한 말들이 시사하는 것처럼 부패의 척결은 역대 정권이 다투어 내세운 구호였다. 그러나 당초의 요란한 구호나 정치적 몸짓과는 달리 부패의 규모가 갈수록 커져온게 아니냐는 의혹이 짙어진다. 역대 정권이 부패 척결을 내세운 것은 정말로 부패를 추방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정 부패 체계의 독점을 위해서가 아니냐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인삼이나 형벌이나 우체국처럼 말이다.

그나마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세워진 「문민 정부」의 실패가 지금 국민에게 심각한 위기감을 안겨주고 있다. 삶과 정치의 질을 높일 만한 발전의 단계에서 빚어진 것이어서 국민의 좌절감은 더욱 크다. 현정부의 실패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고 정치적 교훈을 도출하기 위해서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한낱 시민의 소박한 소견을 말해 본다면 국가 경영의 어려움과 사회 관행의 뿌리깊음에 대한 정권 주체의 과소평가, 죽끓듯 변하는 민심 추이에 대한 과민 현상과 사람을 소모품시하는 인사정책에 실패의 주요 요인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부족한 자원에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인 우리는 세계 열강의 이해관계의 각축장이 되어 있고 위협적인 동족집단과 군사적으로 대결하고 있다. 「괭이」 「굴뚝」 「컴퓨터」 문명이 공존하는 복잡한 사회구조는 우리의 방향 감각을 혼란케 하고 초현실주의적인 21세기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 어떠한 정치적 천재(天才)에게도 벅찬 국가 경영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깊은 검증도 없이 감당할 수 없는 목표를 앞세운데서 문제는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이에선 남의 도덕성이나 무능을 지탄하는 것이 곧 자신의 도덕성이나 능력의 증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상황을 난국이라고 절감케 하는 것은 난국의 사실상의 방조자들이 자기 책임은 제쳐놓고 과격한 언동을 일삼아 난국을 가중시킨다는 점이다. 정치적 비리 공격에 열을 올리는 운전자(運轉者)일수록 교통법규의 항상적인 위반자라는 것이 나의 관찰이다. 정치판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어느 국민이나 자기 분수에 걸맞은 지도자를 갖게 된다는 말이 있다. 48년 이후 한결같이 불행한 대통령만 갖게 되었다면 그것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고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 정치적 교훈 되새겨야 ▼

어려운 고비의 자기위안으로 사람들은 위기가 곧 기회라고들 말한다. 제발 그렇기를 바라는 바지만 현난국에서 정치적 교훈은 익혀두어야 할 것이다. 국가 경영의 어려움에 대한 깊은 인식없이 즉흥적인 화려한 정치적 수사로 국민을 현혹하는 정치 형태는 청산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난국과 실패를 정치적 성숙의 계기로 삼고 모두 자제하여 이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유종호(연세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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