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보판결과 검찰의 태도

  • 입력 1997년 6월 3일 20시 19분


법조문 속에 갇혀있던 추상적 법규범은 구체적 사건에서 법원의 해석 적용을 통해 판결로 선고됨으로써 비로소 생명을 지닌 현실적 규범으로 태어난다. 이런 의미에서 판결을 「살아있는 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2일 선고된 한보사건 판결은 또 다른 의미에서 「살아있는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형법 등에 규정된 추상적인 뇌물의 개념을 국민의 법감정과 상식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했기 때문이다. 한보사건 재판부는 공무원의 직무와 금품수수가 전체적으로 「대가관계」가 있으면 뇌물로 볼 수 있으며 특별히 청탁이나 구체적 대가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또 정치인이 정치자금이라고 생각하고 받았더라도 뇌물로서의 실체가 있으면 뇌물로 봐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뇌물은 뇌물」이라는 당연한 상식을 확인한 것이다. 판결이 선고되자 법정에서는 『시원하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렸다. 이 광경을 보면서 뇌물에 대한 검찰의 태도를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은 뇌물에 대해 답답할 정도로 형식논리에 치우친 해석을 해왔다. 「구체적 청탁」이니, 「대가성(代價性)」이니 하면서 뇌물의 개념을 축소지향적으로 해석해 온 것이다. 그 결과는 「세계 최고의 떡값」을 기록하는 국가적 불명예로 나타나기도 했다. 「떡값」에 관한 한 한보사건 재수사팀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사팀은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 총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정치인 32명 중 8명만 기소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혐의처리했다. 『모두 선거자금이나 정치후원금 명목으로 돈을 받는 등 대가성이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한보 재판부의 「살아있는 판결」로 검찰의 이런 설명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공익의 대표자인 검찰은 공익과 관련된 사건에서는 적어도 51%의 유죄가능성만 있어도 기소하는게 정도(正道)가 아니었을까. 이수형 <사회1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