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법부의 정경유착 斷罪

  • 입력 1997년 6월 2일 20시 09분


한보 특혜대출비리사건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서울지법의 판결은 고질적인 정경(政經)유착의 병폐를 청산하려는 사법부의 단호한 의지를 담고 있다. 재판부가 피고인 11명 전원의 유죄를 인정한 것이나 검찰의 구형량보다는 경감된 것이지만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 총회장에게 사실상 종신형이나 다름없는 징역 15년을, 정총회장의 보좌인 1명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 모두에게 징역 3년 이상의 무거운 실형을 선고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로써 재판부는 부도덕한 기업인과 정(政) 관(官) 금융계 인사들이 야합한 권력형 금융부정사건에 대해 추상같은 단죄(斷罪)를 요청한 검찰의 구형과 고질적인 불법 금품수수 관행의 척결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에 부응한 셈이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도덕불감증에 경종을 울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일벌백계로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듯이 단순한 형사범죄를 넘어 사회와 국가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이 엄청난 사건의 피고인들은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특히 재판부가 정치자금이냐 뇌물이냐를 놓고 법리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국회의원의 금품수수에 대해 포괄적인 뇌물수수죄를 인정한 것은 정치인들의 잘못된 뇌물관행에 쐐기를 박는 것으로 그 의미가 크다. 지난 4월 두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 상고심에서 내린 대법원의 판례가 국회의원에게도 처음으로 인용된 것이다. 또 기업인이 분별없이 회사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하거나 은행대출자금을 변칙적으로 사용한 부분에 대해 횡령 및 사기혐의를 인정함으로써 회사자금과 주머닛돈을 혼동하는 비정상적인 기업인들의 행태에 일대 경종을 울렸다. 아직은 1심 판결일 뿐이고 대법원의 최종판결까지 지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 기업인이나 금융계 인사들은 이 판결의 의미를 똑바로 알아야 한다. 앞으로 정치자금을 주고받을 때는 물론이고 정치자금법 등을 개정할 때도 이번 판결의 취지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한보에 얽힌 형사사건은 이번 판결로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정태수리스트에 포함된 다른 정치인들에 대한 재판이 또 있다. 어떤 형태로든 이번 판결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재판부가 판결문을 통해 한보사건의 책임을 연루자들에게만 국한하지 않은 점도 눈길을 끈다. 재판부는 과거를 처벌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원인을 생각해서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하고 이번 사건을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1심 재판부가 한보사건을 4개월여의 비교적 짧은 시일내에 아홉차례의 공판을 거쳐 신속하게 단죄한 것은 바람직하다. 이번 판결이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큰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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