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돈뿌린 노동자의 「항소이유서」

  • 입력 1997년 5월 28일 20시 16분


▼요즈음은 웬만한 액수가 아니면 돈이 돈처럼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동전 3백원을 주었더니 가소롭다는 듯이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던지듯이 되돌려 주더라는 경험담도 있다. 물가가 많이 오르는 탓도 있겠지만 심리적인 인플레가 더 큰 요인인 것 같다. 정치권이 비자금 대선자금 운운하면서 그같은 인플레 심리를 더욱 부풀려 놓았다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 비자금이 몇천억원에 이르더니 92년 대선자금은 1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얘기도 쉽게 나왔다. 그것도 한보돈 5조원에 비하면 상대가 안된다. 서민들로서는 이러한 돈 규모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아예 무감각해진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 어디서 몇십억, 몇백억원의 뭉칫돈이 나왔다고 하는 세상이니 액수에 대한 놀라움이 없어진지 오래다. 그저 화만 날 뿐이다 ▼1천7백만원짜리 전셋집에 살고 있다는 노동자가 현금 4백만원을 서울 시청앞 건물에 올라가 뿌렸다. 그같은 돌출행동의 배경에는 돈에 대한 저주심이나 돈을 줍는 행인들의 모습을 보며 자조자학하려는 순간적인 충동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돈 좋아하는 정치인들을 경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심리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요즈음 서민들의 치미는 울화를 반영했다는 생각도 든다 ▼이날 뿌려진 4백만원중 회수된 돈은 겨우 8만원이었다고 한다. 돈의 「출처」를 따지지도 않고 오직 횡재했다며 주머니만 챙긴 시민의식도 문제다. 「검은돈」 「흰돈」 가릴 이유가 없다는 세태가 부끄럽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런 세태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치권이 져야 한다. 돈이면 무조건 챙기려고만 드는 정치인들이 오죽 한심했으면 돈뿌리기 해프닝의 대상으로까지 등장할까. 서민들의 분노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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