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 26일 타이베이 시립구장. 그곳엔 중국의 오성홍기가 태극기 일장기 등과 함께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반면 개최국 대만은 청천백일기 대신 대만야구협회기를 게양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사상 처음 중국 야구선수단을 맞는 대만은 그들의 요구 조건을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그대로 수용했다. 주권국가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인 국기와 국가마저 뺏긴 채 중국의 입국을 성사시킨 대만 국민. 그러나 그들은 화를 내거나 비탄에 잠기지 않았다.
이곳의 유력 일간지중 하나인 민생보(民生報)의 왕신량(王信良)기자는 『우리는 본토 선수단이 대만에 와서 경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쁠 뿐이다』고 말했다.
실로 그랬다. 지난 25일 대만과 중국의 경기에 쏠린 대만 국민의 관심은 지대했다. 같은 시간 바로 옆에선 미국 팝가수 휘트니 휴스턴의 공연이 있었지만 시립구장을 가득 메운 대만 국민들은 중국선수들이 한 명씩 호명되자 아낌없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경기 결과는 0대4로 뒤지던 대만의 5대4 역전승.
이날밤 선수단호텔에서 열린 환영연. 유니폼차림의 중국선수들은 식사를 하다말고 한꺼번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이들은 한참만에 양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타났다. 대만측에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였다.
환영연 마지막에 선수단이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되자 중국과 대만 선수단은 서먹서먹해 있는 다른 선수단과는 달리 함께 어울리며 흥을 돋우는 것으로 대회 첫 날밤을 멋들어지게 장식했다.
과연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일까. 남북한 스포츠교류가 아직도 얼어붙어 있는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 보며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타이베이=장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