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손칼국수를 만들며

  • 입력 1997년 3월 5일 08시 02분


하루는 가족에게 어떤 음식을 해줄까 생각하다 손칼국수를 만들기로 하고 시아버님께서 마련해주신 홍두깨와 안반을 챙겼다. 우리집은 별미 음식을 즐기는 편이라 가끔 손칼국수를 만들어 먹곤 하는데 아이들도 그때마다 호기심을 갖고 옆에서 지켜본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시절 친정어머니는 언제나 많은 일꾼들의 끼니를 준비하셔야만 했다. 이따금 칼국수를 만드시는 날엔 동생과 나는 국수가 다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은 국수꼬리 부분을 숯불에 구워먹곤 했다. 그래서 예전에 느껴보던 구수한 맛은 아닐지라도 우리아이들에게도 국수꼬리 부분을 가스불에 구워 줬더니 별 까탈없이 잘 먹는다. 요즘 아이들은 음식의 풍요로움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예전의 어린이들이 먹던 음식을 맛보게 함으로써 가난이 무엇이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고통이 무엇이며 음식의 소중함도 일깨우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 칼국수를 만들면서 문득 향수에 젖어 본다. 해질녘이면 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많은 일꾼들이 넓은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둘러앉는다. 그때 호롱불 아래서 칼국수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던 고향의 정겨운 저녁풍경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사실 요즘은 굳이 집에서 힘들이지 않아도 우리의 음식을 쉽게 구해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랑과 정성이 담긴 주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음식과는 비교가 안된다. 음식 만들기가 귀찮을 뿐만 아니라 다소 시간이 걸리고 품이 들더라도 가끔 시간을 내어 가족들에게 우리 고유의 음식을 제공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음식을 만들면서 아이들에게 엄마의 추억을 얘기하고 소중한 우리음식에 대한 고마움을 알게 해준다면 그것 또한 행복한 주부의 모습이 아닐까.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우리는 요즘 많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라져 가는 우리의 소중한 음식문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때다. 오늘 저녁엔 손칼국수를 넉넉히 만들어 이웃에게도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 주어야겠다. 송정숙 (전남 동광양시 금당동 624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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