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52)

  • 입력 1997년 2월 24일 20시 23분


가을이 깊어지는 동안〈7〉 『그러면 난 멀리 가고 싶어져』 여전히 전과 같지 않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함께 오래 걸을 수 있는 데로 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오토바이는 교문을 나와 학교 앞 전철역 입구쯤 왔을 때, 푸르륵 하고 시동이 꺼지며 멈춰섰다. 『내려』 그가 아까보다 더 화가 난 듯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고장인가요?』 『아침에 학교 올 때에도 속을 썩이더니 기어이 서버리고 마는군』 『그럼 어떡하죠?』 『아까 그 자동차를 탈 걸 그랬지?』 그것은 그의 심중에 들어 있는 말의 일단일 것이다. 짧은 거리를 오면서도 그는 뭔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보였다. 『꼭 그렇게 말해야만 편해지나요?』 『아니』 『그럼 왜 그래요?』 『몰라 나도. 이럴 땐 왠지 모르게 심술이 나거든』 오토바이는 우선 가까운 가게에 맡기기로 했다. 그는 시골에서 올라온 너무도 가난한 가정의, 너무도 가난한 아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래서 그가 멈춰선 오토바이 앞에 의기소침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함께 버스를 타고 나간 서오릉에서도 그는 내내 불편한 얼굴을 했다. 단순히 아까 본 자동차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지나친 데가 있었다. 평소 그녀가 알기로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실히 독립군답지 못한 태도였다. 한 시간도 넘게 그곳의 산책로를 걸으면서도 그랬다. 그렇게까지 신경쓸 일은 아니잖느냐고 말했을 때 그도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아무튼 기분이 나빠』 『그런 말 독립군하곤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알아요?』 『알아도 그래』 『알면서 그러는 건 또 뭔데요?』 『내가 그 자식을 조금도 이해하거나 좋아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는 걸 서영이가 모르니까』 그는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 말했다.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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