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화제]빨치산출신 곤충연구가 윤인호씨

  • 입력 1997년 2월 14일 20시 10분


[윤종구 기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비는 네스티라 몰포나비예요. 영롱한 남빛이 눈부시죠. 가장 큰 갑충은 디나스터스 헤르쿨레스라는 곤충이고요. 왕물결나방은 우리나라에만 있어요』 「곤충박사」 윤인호씨(77). 곤충에 대해서라면 그는 하루종일 말을 해도 모자란다. 30년이 넘도록 나비 풍뎅이 등 곤충을 쫓아다닌 결과다. 그가 빨치산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한국전쟁때 이현상 남도부 방준표 등 빨치산 핵심인물들과 함께 태백산맥 소백산맥을 수없이 오르내렸다. 전쟁후 빨치산 전력을 숨기고 경기도 양평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체포돼 3년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60년 출소했다. 진주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일본대 법학과를 졸업했지만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혀 직업도 구할 수 없었다. 출소후에도 지난 87년 전향진술서를 쓸 때까지는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했다. 그런 상태에서 유일한 낙은 곤충채집뿐이었다. 전국의 산을 내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는 국내 곤충의 생태를 손금보듯 꿰고 있다. 85년에는 오대산에서 홍줄나비를 최초로 채집, 이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국제곤충학회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빨치산생활이 곤충채집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말없이 웃는다. 『지금은 그나마 저의 과거를 얘기라도 할 수 있게 됐지요. 지난 수십년동안 암흑의 터널 속에서 유일한 말동무는 나비 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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