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봄에 온 남자〈8〉
『이젠 서영이가 아이가 아니니까. 그걸 파리에선 왜 몰랐는지 몰라』
『그래도 편지는 쓸 수 있잖아요』
『그러면 내가 힘들어지니까』
『아저씨가 편지를 하지 않았을 때 제가 힘들었어요』
『지난 번 볼 때에도 그랬고』
『그래서 절 그렇게 대했던 건가요?』
『서영이가 어떻게 왔는지를 아니까. 그때 다가가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런데 언제까지 그렇게 놔둘 수가 없었어. 아니, 널 놔둘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날 이기지 못했던 거야』
『아저씨가 그러면 저는 또 나올 거라구요』
서영은 제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서너 걸음쯤 앞서 걸어가는 아저씨의 등을 향해 말했다. 아저씨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깨 힘 빼고 걸어. 나는 어깨에 힘 들어가 있는 사람만 보면 불편해지니까』
하마터면 아줌마하고도 그래서 이혼했나요? 하고 물을 뻔했다. 아저씨의 어깨가 조금 전처럼만 크게 보였어도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 어깨가 커 보이면 어떤 말도 상처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난 번에도 넌 오지 말았어야 했어』
다시 길을 걸으며 아저씨가 말했다. 너라고 말하는 건 아저씨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취했고, 용기가 생겼다는 뜻일 것이다.
『지난 번에 넌 뒤늦게야 날 보러왔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야. 너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 뒤돌아봐야 할 추억을 그때 미리 보러왔었던 거야』
물론 서영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지금 자기 자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혼란에 빠져 있는 거라고. 그러나 그 혼란이 아무리 깊다 해도 지난 오년간의 시간보다 깊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 아저씨를 만나러 왔을 때 이제 아저씨를 사랑하겠다는 마음이었던 건 아니었다. 단지, 오랜 시간 편지를 주고 받았던 아저씨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이제 들어가. 밤도 깊었고』
아저씨는 길에서 택시를 잡았다.
『바래다주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나는 아이에게 가 봐야 해』
『하지만 난 아저씨를 보러 또 나와요』
아저씨가 문을 닫을 때 서영이 말했다.
<글 :이 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