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민기 엄마에게

  • 입력 1997년 1월 24일 20시 14분


민기 엄마, 민기네에게 전세 놓았던 집을 팔기로 계약한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차마 알리지 못해 아직도 마음이 무겁고 우울하답니다. 민기 엄마와의 첫 만남은 작년 3월이었지요. 시댁에서 분가하게 됐다며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우리 집을 전세 계약했던 날이 말예요. 그후 한 달이 지나고 이사를 하던 날, 나는 민기 엄마의 심성이 곱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큰 아이가 여섯살이 될 때까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셨다지요. 친딸 이상으로 아끼고 챙겨주시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온 착한 며느리였음을 한 눈에 느낄 수 있었지요. 그런데 착한 민기 엄마가 집주인을 잘못 만난건 아닌지. 세를 준 입장에서 1년도 안돼 본의 아니게 집을 팔게 돼 못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 뿐이네요. 비록 부득이한 사정으로 집을 매매하게 되었지만 민기 엄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계약의 첫째 조건에 우선 세입자를 보호해야 함을 명시했고 또 민기 엄마가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새 집주인의 인상이 무척 좋아보였으니 여러모로 안심해도 될것 같아요. 우리도 젖먹이를 데리고 남의 집을 전전하던 신혼 때가 있었지요. 그땐 아주 힘들고 서글픈 생활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우리가 이쯤 살게 된 것도 그때의 생활이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하곤 해요. 예전의 나를 생각케 하는, 그래서 더욱 정이 가는 민기 엄마. 세를 살다보면 이사도 자주하고 집주인도 가지가지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지요. 그것이 세상 살아가는 자연스런 과정이라 여기면 어떨까요. 10년쯤 뒤 다음 세대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민기 엄마의 넉넉한 인심을 나눠 준다면 지금의 심정이 오히려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며칠 뒤 찾아가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집을 팔게 된 사정을 얘기 할게요. 또 우리 부부가 허리띠 졸라매며 처음으로 장만했던 내 집, 그러기에 나의 애정과 손길이 구석구석 배어있는 그 집을 한번 둘러보고 싶군요. 내집처럼 깨끗하게 써준 민기 엄마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군요. 민기네 가정이 언제까지나 행복하고 가족 모두 늘 건강하길 마음으로 빌겠어요. 김 명 숙(경기 분당구 수내동 푸른마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