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축제/比 「시눌록」]가톨릭上陸 재현 『수상쇼』

  • 입력 1997년 1월 22일 20시 51분


「세부(필리핀)〓金次洙기자」 18일 새벽 동이 트기 직전 필리핀 제2의 도시 세부 앞바다에 수백t급 호화여객선에서부터 서너명이 타는 모터보트에 이르기까지 1백여척의 배들이 모여들었다. 필리핀 최대의 종교 민속축제인 「시눌록축제」의 본격적인 개막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필리핀에 가톨릭이 처음 전래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매년 1월중순 열리는 시눌록축제의 본격적인 행사는 아기예수 인형(크기 약 50㎝)을 뱃머리에 실은 모선이 오전 6시 세부항에 도착, 앞바다에서 두시간 동안 해상 퍼레이드를 벌이며 바다에서 막이 올랐다. 최초로 세계일주에 성공한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1521년 필리핀을 발견하고 예수인형을 전해주는 과정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날 해상퍼레이드에 참가한 1백여척의 배들은 꽃과 오색깃발 풍선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장관을 연출했다. 또 해상퍼레이드가 펼쳐지는 항구주변에는 수만명의 구경꾼들이 나와 폭죽을 터뜨리며 손을 흔들었고 정박중인 수십척의 선박은 고동을 울리면서 축제에 동참했다. 호화여객선 워터제트호를 타고 가족과 함께 해상퍼레이드를 지켜본 파울 알카자렌(48·변호사)은 『어려서부터 시눌록축제를 지켜봤는데 특히 해상퍼레이드는 필리핀의 개국을 의미하는 중요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선단을 이끌고 퍼레이드를 벌인 모선이 오전8시반 세부항 제1부두에 닻을 내리자 민속의상을 차려입은 여자들이 전통춤을 추면서 아기예수 인형을 맞았다. 스페인 복장으로 분장한 모선의 선원들은 평소 아기예수 인형이 안치돼 있던 바실리카성당으로 향했다. 특히 성당에는 외국 관광객들이 많아 축제의 관광상품화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83%가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 사람들은 마젤란이 전해준 아기예수 인형을 「산토 니뇨」(거룩한 아기예수)라고 부르며 이날 축제 참가 인파들은 「피트 새뇨르」(찬양 아기예수)라고 합창하듯 외쳤다. 필리핀에 가톨릭이 전래된 것을 기리기 위해 1565년 시작된 시눌록축제의 이름은 찬양이라는 의미의 토속어 「오록」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자들은 시눌록축제가 4백년이상 지속된 것은 필리핀 사람들이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는동안 축제를 통해 압박의 설움을 달랠 수 있었고 스페인 입장에서는 종교행사를 통해 식민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올해 시눌록축제는 지난 10일에 시작됐지만 본격적인 행사는 18일의 해상페스티벌과 종교의식에 이어 시민들이 참여하는 19일의 거리축제로 이어졌다. 필리핀 전국 각지역에서 온 70여개 참가팀은 19일 오전 세부시 외곽의 이무스거리로 모여들었다. 멋있게 춤을 추면서 행진하는 팀에는 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참가자들의 열기는 한층 높았다. 원색의 호화로운 전통의상에 갖가지 분장을 한 참가자들은 강렬한 음색의 타악기 소리에 맞춰 열성을 다해 춤을 추었다. 거리축제는 한마디로 색과 소리가 조화를 이룬 향연 같았다. 깜찍한 모습의 초등학생부터 중년 남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참가자들은 두발짝 앞으로 나갔다가 한발짝 물러서는 식으로 조금씩 전진하는 시눌록축제 춤의 기본동작과 함께 구경꾼의 눈길을 끌기 위해 독특한 춤동작을 선보였다. 참가팀이 행진하는데 5시간이상 걸렸지만 구경나온 시민들의 숫자는 끝날 때까지 거의 줄지 않았다. 스웨덴에서 시눌록축제를 보기위해 왔다는 케스틴 스트룀(63)은 『필리핀의 전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감탄했다. 이날 축제에는 세부시와 자매결연한 전남 여천시의 농악대가 초청팀으로 참가, 한국의 전통농악을 연주하면서 행진해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시눌록축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으로 이민갔다 18년만에 역이민왔다는 글레리오 로사 마스클라도(52)는 『필리핀에 가톨릭이 들어옴으로써 결국 3백여년간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면서 『정체성없이 가톨릭과 서구문화를 찬양하는데 지나지 않는 시눌록축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불평을 털어놨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