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52)

  • 입력 1996년 12월 24일 20시 36분


추락하는 것은 평화롭다〈26〉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현석을 바라본다. 현석도 나를 보고 있다. 갑자기 그가 두 팔을 뻗어 내 어깨를 거칠게 끌어당긴다. 내 몸이 조수석쪽으로 기우뚱하면서 그의 품속으로 들어간다. 그가 몸을 한껏 앞으로 기울여 내 양쪽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는다. 나는 현석이 이끄는 대로 변속기 레버를 타넘어서 조수석으로 건너간다. 팔꿈치가 혼 스위치를 눌렀는지 짧게 삑 소리를 낸다. 폭이 넓은 랩스커트의 한쪽 끝이 사이드 브레이크에 비죽이 걸쳐져 있다. 마주보고 현석의 무릎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나는 그의 머리를 감싸안는다. 현석이 내 스웨터를 올리고 드러난 젖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가로등의 불빛이 차창에 쌓인 흰 눈을 뚫고 들어와 차 안에는 희미한 오렌지빛이 감돈다. 그 위에 두 사람의 가쁜 숨소리가 허연 입김을 만들어 내뿜을 뿐 사방은 조용하다. 레버를 찾아 누르자 시트가 완전히 뒤로 젖혀지면서 내 몸이 현석 위로 포개진다. 스커트 밑으로 들어온 현석의 손이 내 속옷에 닿는다. 얼마 안 가 벗겨져내려서 내 왼쪽 발목에 걸쳐진다. 그의 남방셔츠의 단추를 벗겨내는 내 손끝으로 심장의 박동이 전해져 온다. 현석의 벨트 고리가 벗겨지는 가벼운 쇳소리, 그리고 바지가 끌어내려지며 다음 순간 내 몸에 그의 속살이 따뜻하게 닿는다. 우리의 몸은 순식간에 서로의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내 두 팔은 현석의 머리를 가슴에 꼭 껴안고, 현석의 두 손은 내 엉덩이를 받친 채 우리는 폭풍우와 격랑 속을 헤쳐나가는 작은 배처럼 격렬하게 노를 젓는다. 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그는 내 가슴을 깨문다. 그러나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의 몸은 하나였다. 내 젖가슴을 깨무는 감촉이 내 입술에도 느껴졌으며, 우리의 얼굴이 서로 엉켜 있어서 내가 잡아당기는 것이 누구의 머리카락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현석이 중얼거린다.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어. 이건, 저주야』 계속 눈이 내리고 있는 기척이 느껴질 뿐 차안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본다. 뒤창을 두껍게 덮고 있는 하얀 눈.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차단시켜주고 사무치게 사랑하게 해주는 얼음의 벽,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뜨겁게 서로의 깊이를 찾아 뒤척이고 있다. 저주라면, 이대로 풀리지 말기를, 이렇게 한몸으로 얼어붙어버리기를. <글 : 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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