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41)

  • 입력 1996년 12월 12일 19시 57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31〉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없는 젊은이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걸겠다는 제 결의를 확인한 내시는 말했습니다. 「그럼 잘 들으시오. 해가 지면 곧 왕비께서 세우신 티그리스강변의 사원까지 와 주시오. 밤이 되면 기도를 드리고 거기서 주무시오」 내시는 이 말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밤이 되자 저는 내시가 일러준 그 사원으로 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날밤을 거기서 지새웠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몇 사람의 내시들이 조그마한 배 한 척을 타고와 빈 궤짝들을 사원 안으로 날라다 놓고는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은 돌아가지 않고 사원에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닌 어제 낮에 저를 찾아왔던 바로 그 내시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보니 어떻게 들어왔는지 바로 저의 애인이 들어오더니 쪼르르 저에게로 달려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더니 와락 저의 품에 안기면서 뜨거운 입맞춤과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이제 저는 당신의 여자가 될 테니까요」 그녀는 이렇게 속삭이고는 저를 빈 궤짝에 넣고 쇠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조금 전에 사라졌던 내시들이 많은 물건들을 그러안고 들어왔으므로 저의 애인인 그 여자는 그 물건들을 빈 궤짝에 넣고는 모두 뚜껑을 덮고 쇠를 채웠습니다. 일이 끝나자 내시들은 궤짝들을 다시 배로 옮겨 싣고는 왕비의 궁으로 향했습니다. 배가 일렁거리기 시작하자 궤짝 속에 쭈그리고 있는 저는 갑자기 불안해져서 혼자말을 하였습니다. 「너는 들뜬 정욕 때문에 몸을 망쳐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문제는 소원이 이루어지느냐 마느냐지만」 그리고 이 위험한 고비에서 구출해 주십사고 나는 알라께 빌어마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배는 궁전 앞에 도착했고 일동은 궤짝들을 떠메어 옮겼습니다. 그 궤짝들 중 하나에 제가 들어 있었다는 것은 새삼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내시들은 궤짝을 떠메고 안으로 들어가 내시들이며 하렘의 경비병 그리고 휘장 뒤의 궁녀들 앞을 지나 내시장의 방 앞에 이르렀습니다. 졸고 있던 내시장은 눈을 뜨고는 소리쳤습니다. 「그 궤짝 속에 뭐가 들어 있나?」 그러자 저의 애인이 말했습니다. 「왕비님께서 분부하신 물건이 들어 있어요」 「그래? 그럼 어디 한번 조사를 해볼테니 하나씩 열어보도록 해」 「왕비님의 물건을 조사해보겠다고요?」 저의 애인은 어림도 없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시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잔소리 말고 거기다 궤짝들을 내려놔! 그것들을 꼭 열어봐야겠어」 이렇게 말하면서 내시장은 커다란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조사를 받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제가 숨어 있는 궤짝이었습니다. 내시장이 궤짝 문을 열려고 할 때 저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오줌을 싸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되자 오줌은 주르르 궤짝의 틈 사이로 흘러나오고 말았습니다』 <글 :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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