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라피의 발명」번역 출간…탄생-기능등 설명

입력 1996-11-20 20:26수정 2009-09-2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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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恩玲기자」 장정일씨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한 사법당국의 제재와 이에 대한 문인들의 조직적인 반발로 또 한차례 「외설이냐 예술이냐」는 해묵은 논쟁이 재연될 조짐이다. 이같은 논쟁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빨간책」이라는 은어로 지칭돼 온 「포르노그라피(Pornography)」의 역사와 기능을 밝힌 신간이 나와 화제를 모을 것으로 보인다. 「포르노그라피는 추잡하고 불경한 책」이라는 감성적 이해가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수준이지만 최근 출간된 번역서 「포르노그라피의 발명」(책세상 간)은 포르노그라피가 갖는 사회적 함의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옮긴이는 교원대 역사교육과 조한욱교수. 제목이 풍기는 은근한 도발성과는 달리 「포르노그라피의 발명」은 린 헌트 펜실베이니아대학 석좌교수 등 전문학자 9명의 진지한 논문으로 구성돼 있다. 논문들은 9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열렸던 같은 이름의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던 것들. 저자들은 현대 포르노그라피의 가치에 대해 직접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논쟁을 이해하는데 필수요소인 「포르노그라피의 역사」를 프랑스국립도서관 등 각국 도서관에 소장된 16∼19세기 도색화 50여점을 곁들여 충실히 소개한다. 저자들의 포르노그라피 역사탐구의 출발점은 1500년대. 옥스퍼드영어사전에 「포르노그라피」라는 단어가 최초로 수록된 것은 1857년의 일이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야말로 포르노그라피의 개화기라는 주장이다. 인쇄술의 발달로 인쇄물과 필사본 도색물의 유통이 쉬워진 가운데 그리스 로마의 예술품에 등장하는 풍만한 나신, 성애장면 등을 당대의 예술가들이 앞다투어 흉내내면서 포르노그라피의 붐이 도래했다는 분석이다. 당시의 포르노그라피는 단순히 서민들의 눈을 현혹하는 돈벌이 수단만은 아니었다. 포르노그라피의 고전으로 꼽히는 「16개 체위」의 저자 피에트로 아레티노(1527∼56, 베네치아)는 『남자가 여자위에 올라타는 것을 보는 것이 왜 잘못된 일인가? 인류의 보존을 위해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한 바로 그것이야말로 휘장처럼 목에 두르고 메달처럼 모자에 달아야 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책 삽화가를 「음란 조장」의 죄목으로 옥에 가둔 교황에 공공연히 맞섰다. 포르노그라피가 지배계층에 대한 저항수단으로 최고로 활약한 것은 프랑스혁명 당시. 혁명파들은 『왕비가 낳은 아이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의 포르노그라피를 통해 왕권실추에 결정타를 가했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왕비가 시동생인 다르투아백작 폴리냑공작부인과 집단혼음을 하는 내용을 그린 「취한 오스트리아여인」은 당국의 집중단속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새디즘」이라는 단어를 낳은 악명높은 포르노그라피작가 사드후작조차 혁명 당시 파리의 지역책을 맡아 활약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이 성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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