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승훈-최동호,「정신주의」「해체주의」지상논쟁

  • 입력 1996년 10월 21일 21시 00분


「鄭恩玲기자」문단내의 전반적인 「토론부재」분위기 속에서 최근 두 명의 중진시 인이 치열한 논전을 벌여 눈길을 끌고 있다. 논전의 주인공은 고려대 최동호교수와 한양대 이승훈교수. 논전은 최동호교수가 「문학사상」 10월호에 이승훈교수의 최근작에 대한 비평을 게재하면서 시작됐다. 최교수는 이교수의 시 「이 시대의 시쓰기」와 시론 「모든 끝이 시작이다」 등을 예로 들면서 『우리 시단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승훈 시인이 시를 부정하는 선봉장이 됐다』고 포문을 열었다. 최교수는 「시 쓰기의 불가능성은 시쓰기의 가능성이다」 「시를 쓰려면 시를 못 쓴다. 시를 쓰지 않으려고 시를 쓴다」 등 최근 이교수가 주장해온 명제들은 『긍정 과 부정을 교묘하게 접합시켰지만 결국 시쓰기를 부정하는 것일 뿐』이라며 『그렇 지 않아도 시 앞에 주눅들기 쉬운 독자나 시인 지망생들에게 혼란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최교수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이승훈교수는 이달말 발간될 「문학사상」 11월호에 80장에 달하는 원고를 기고,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이교수는 『나는 시 쓰기를 부정하지만 내가 부정하는 시는 부르주아적 시, 사유 주체가 존재한다는 입장의 시, 인습적인 시』일뿐이라고 전제했다. 이교수는 『계몽주의적 이성이 한계에 달한 상황에서 새로운 시는 인습적인 의미 의 시를 포기하고 싸워야 한다』며 왜 이런 생각이 비판받아야 하는가라고 최교수에 게 반문한다. 이교수는 또 『최동호교수는 우리 시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진정성과 건강성 을 강조하지만 도대체 시에서 참되고 바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라고 묻고 『오 히려 진리와 허위라는 이항 대립체계를 부정하는데 시적 진리가 있는 것』이라고 최 교수의 시론을 공박했다. 문단에서는 최, 이 두교수의 논전이 순수시계열의 양대흐름으로 일컬어지는 이른 바 「정신주의」와 「해체주의」가 맞붙은 것이라고 해석한다. 최교수는 「정신주의」, 이교수는 실험중심의 「해체주의」진영에서 각각 주된 이 론공급자이자 대표적 시인으로 꼽히는 인물들인 것. 「문학사상」 권영민주간(서울대교수)은 『80년대까지 우리 시단의 논쟁은 민중시 대 순수시, 체제내 대 반체제 등 이념논쟁에 국한됐다』며 『이번 논쟁은 시의 본 질에 대한 논의라는 점에서 발전적』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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