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만 빨랐던 사사키 로키를 ‘퍼펙트 투수’로 바꾼 특별한 1년[이헌재의 B급 야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8일 1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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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바 롯데 마린스 인스타그램〉
〈출처: 지바 롯데 마린스 인스타그램〉
‘로키’ 하면 누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어느덧 아재가 된 필자에게는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복서가 떠오릅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으로 나오는 로키(Rocky)는 풋 워크를 연상시키는 경쾌한 주제곡으로도 유명하지요.

사춘기 아들에게 로키를 아느냐고 물어보니 “디즈니플러스에서 만든 6부작 미드”라고 답하더군요. 평론가들과 일반 시청자들에게 극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야구팬들도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로키가 탄생했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의 괴물 투수 사사키 로키(佐¤木 朗希)입니다. 로키는 요즘 일본에서 가장 뜨거운 ‘야구 선수’를 넘어 ‘가장 뜨거운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1세의 프로 3년차 투수 사사키 로키는 10일 열린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경기에서 9이닝 동안 105개의 공으로 27명의 타자를 완벽하게 제압하며 일본프로야구 16번째 퍼펙트게임을 달성했습니다. 199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마키하라 히로미 이후 처음 나온 퍼펙트게임으로 역대 최연소(20세 5개월) 기록도 세웠지요. 뿐만 아니라 한 경기 최다 탈삼진 타이(19개), 연속 타자 탈삼진 신기록(13개) 등도 모두 갈아 치웠습니다. 참고로 퍼펙트게임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23번 나왔고, 40주년을 맞은 한국 프로야구 KBO리그에서는 아직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진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17일. 니혼팸 파이터스와의 안방경기에 선발 등판한 사사키는 퍼펙트게임엔 단 1이닝이 모자란 8이닝 퍼펙트 피칭을 했습니다. 8회초까지 24명의 타자를 상대로 14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단 한 명에게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지요. 9회초에 구원 투수 마스다 나오야로 교체되면서 세계 최초의 2경기 연속 퍼퍽트게임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날 경기는 연장 10회초 솔로 홈런을 때린 니혼햄의 1-0 승리로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모든 관심을 받은 것은 17이닝 연속 퍼펙트 피칭을 이어간 ‘괴물’ 사사키였습니다. 사사키는 8회까지 102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1이닝을 더 던질 법도 했지만 이구치 다다히토 감독은 과감하게 그를 교체하는 강수를 뒀습니다. “7회를 마쳤을 때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8회에 교체할 생각이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대기록을 바랐던 야구팬들 중에는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사사키는 8회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을 때에도 160km가 넘는 강속구를 뿌렸거든요.

그런데 사사키라는 괴물 투수는 어떻게 이렇게 깜짝 스타로 출현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사사키는 고교 3학년이던 3년전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운명의 한일전에도 출전한 적이 있는 투수입니다. 2019년 부산 기장에서 열린 제2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가 그 무대였습니다.

1일 부산 기장군 현대차 드림 볼파크에서 제2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U-18) 조별리그 미국과 일본의 경기가 열린다. 일본 사사키 로키가 외야에서 몸을 풀고 있다. 기장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1일 부산 기장군 현대차 드림 볼파크에서 제2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U-18) 조별리그 미국과 일본의 경기가 열린다. 일본 사사키 로키가 외야에서 몸을 풀고 있다. 기장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당시 오후나토고에 재학 중이던 사사키는 대회 전 열린 합숙 연습대회에서 163km의 강속구를 스피드건에 찍었습니다. 이는 이전까지 일본 고교야구 최고 강속구였던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의 160km를 훌쩍 뛰어넘은 기록이었지요. 그래서 그 대회에도 수백 명의 일본 취재진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찾아 한국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한국과의 슈퍼라운드 2차전에 선발 등판한 사사키의 투구는 한마디로 ‘기대 이하’ 였습니다. 160km가 넘는다던 직구 최고 구속은 불과(?) 153km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구가 엉망이었습니다. 삐쩍 마른 몸을 짜내듯이 던지는 투구 폼도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당시 사사키는 오른손 중지 물집 부상으로 1이닝 동안 19개의 공만 던진 후 허탈하게 마운드를 내려갔습니다.

단순히 공만 빨랐던 사사키가 진정한 ‘괴물 모드’로 개조를 시작한 것은 프로 입단 후입니다. 2020년 지바 롯데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것이 어찌 보면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 신인이던 그해 사사키는 1차 지명 유망주답게 1년 내내 1군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말 그대로 1군에 머물기만 했을 뿐 경기에 출전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시험 삼아 등판 기회를 줄만도 했지만 이구치 감독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직 경기에 나설 만한 수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렇다고 2군으로 내려서 경기를 뛰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아픈 데도 없었던 사사키는 1년 내내 경기에는 전혀 나서지 않으면서 모든 1군 일정을 동행할 뿐이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흔히 말하는 ‘육체강화’에 주력했습니다. 철저한 스케줄에 따라 몸을 불리고, 근력을 키웠습니다. 동시에 제구력을 잡는데도 많은 노력을 했지요. 그리고 지난해 비로소 1군 무대에 11경기에 등판해 3승 2패, 평균자책점 2.27을 기록했습니다.

일본프로야구(NPB) 지바 롯데의 사사키 로키(21·사진)가 28년 만에 리그 통산 16번째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지바 롯데 마린스 인스타그램〉
일본프로야구(NPB) 지바 롯데의 사사키 로키(21·사진)가 28년 만에 리그 통산 16번째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지바 롯데 마린스 인스타그램〉
그리고 올해 그는 마침내 괴물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올 시즌 그는 최고 164km의 빠른 공을 던졌습니다. 매 경기 160km 이상의 빠른 공을 수시로 뿌립니다. 그것도 제구가 되는 160km대의 빠른 공입니다.

직구 하나만으로도 타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일텐데 그는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를 포크폴을 잘 던집니다. 포크볼 구속은 KBO리그 투수들의 평균 직구 구속에 필적하는 140km대 중반입니다. 그는 이 포크볼로도 스트라이트와 유인구를 던질 줄 압니다. 직구와 포크볼 단 두 가지 레퍼토리로 마운드를 평정해 버린 것이지요.

올 시즌 4경기에 등판한 그는 31이닝을 던지는 동안 삼진을 무려 56개나 잡았습니다. 9이닝을 기준으로 하면 16.26개라는 경이적인 숫자가 나옵니다.

지금대로라면 사사키는 내년에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일본 대표팀 승선이 유력합니다. 한국 타자들로서는 오타니 쇼헤이에 이어 또 한 명의 ‘괴물’을 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될 것입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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