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를 가리는 스포츠… 베팅도 산업이다[장환수의 수(數)포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1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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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내 사주팔자에는 없을 거라 굳게 믿는 스포츠가 어찌하다 보니 인생이 돼버린 기자가 족히 수천 번은 들은 질문이 있다.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누가 이길 것 같아.” 알 게 뭐람. 내가 그걸 알면 돗자리 깔고 떼돈 벌었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기자는 여태 월드컵 우승팀이나 한국전 스코어 맞히기 같은 내기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일반인보다 낫지 않나 하는 자부심이 있기는 하다.

▶바로 이런 마음이다. 이 자리를 비집고 유혹이 찾아온다. 도박은 기자가 볼 때 ‘즉각성, 편의성, 예측 가능성, 환급률, 잭팟’의 다섯 지표가 중독률을 좌우한다. 1주일을 기다려야 하는 로또보다 몇 분이면 결과가 나오는 경마가 빠져나오기 힘들다. 정선 산골까지 가기보다는 휴대폰만 있으면 되는 온라인 카지노가 시장이 크다. 운에 모든 걸 맡기는 로또보다는 전문성이나 정보가 있으면 맞힐 것 같은 토토나 경마가 중독성이 높다. 제도권의 5배 이상일 거라는 사설 도박은 세금을 안 떼니 대체로 환급률, 즉 배당이 높다. 잭팟 크기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국내에선 여론조사만 나왔지만 해외에선 베팅업체가 코너를 개설했다. 영국 정치 스포츠 베팅업체 스마켓(Smarkets)은 타국 대선에까지 끼어들어 돈벌이에 나섰다. 이 업체에 따르면 1월만 해도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당선인을 더블스코어로 앞섰지만 2월엔 정반대로 역전됐다.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 이달 초 배당률은 1.44배(윤석열) 대 3배(이재명)로 더 벌어졌다. 이는 1파운드를 걸면 각각 1.44파운드와 3파운드를 받게 된다는 것으로 배당률이 낮을수록 당선 확률은 높다. 지지율은 물론 당선 가능성조차 허구한 날 오차범위 안팎인 몇 퍼센트 포인트 차라고 앵무새처럼 말하는 국내 여론조사와는 달리 화끈한 예측이다.

▶스마켓은 국내 스포츠 경기까지 매일 10개 가까이 올려놓고 있는 등 전 세계의 승부를 커버하고 있다. 분야가 워낙 다양한데다 인터페이스가 잘돼 있으니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겠다. 20일 현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2024년 대선 당선 배당률은 4.7배로 뜻밖에도 조 바이든 현 대통령(6.2배)보다 낮다.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 베팅에서도 배당률 2.5배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4.8배)를 압도한다. 2024년 러시아 대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다시 뽑힐 확률은 56.5%(1.77배)이다. 믿거나 말거나.

▶국내에선 정치 분야 베팅이 불법이다. 로또를 비롯한 각종 복권과 강원랜드 카지노, 그리고 스포츠 관련인 토토, 경마, 경륜, 경정이 있을 뿐이다. 모두 정부가 사실상 독점권을 가진 사업이다. 이마저도 각종 규제로 묶어 놨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매출 총량과 인당, 회당 매입금액 등을 정해놓고 관리한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으니까 ‘규제가 있으면 대책이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사설 도박이 활개를 친다. 사설 도박은 환급률은 높을지 몰라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 한순간에 쪽박을 찰 수 있다. 국가의 주 수입원인 세금을 걷지 못하는 지하 경제다. 규제는 4차 산업 발전에도 대못을 박는다. 게임업계에선 P2E(Play to Earn)와 관련 코인 개발이 핫이슈이지만 업체들은 국내를 떠나 해외 출시로 활로를 찾고 있다. 게임 대국이지만 게임토토는 없어 국내 대작들은 외국 베팅업체에서 사용되고 있다.

▶스포츠는 최근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스포츠의 전통적인 정의는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는데 ‘승부, 체력, 품새’이다. 하지만 바둑. 체스와 e스포츠 같은 멘털 종목이 대한체육회 가맹단체가 됨으로써 이제 승부만 남았다. 국내에선 도박으로 금기시돼온 카지노 게임도 외국에선 대회가 열리고 베팅이 이뤄진지 오래다. 스포츠베팅은 거대한 산업이다. 글로벌 스포츠 데이터 분석 업체인 스포트레이더(Sportradar)는 올해 세계 스포츠베팅 매출이 1조4500만 유로(약 1945조원)를 돌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계 10위인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과 거의 같다. 규제에는 다 이유가 있을 테고 이를 준비 없이 풀었을 때 부작용이 예상된다. 그러나 사설 도박을 양지로 끌어내고, 스포츠베팅이 산업이란 원론적 입장에서 보면 이미 갈 길은 정해져 있다.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고 온라인 마권 발매는 아직도 무소식인 우리나라가 세계 스포츠베팅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1%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다행인 것은 윤석열 캠프가 내놓은 체육 공약은 다듬을 게 많지만 보수의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스포츠가 곧 복지”라는 윤 당선인의 말은 퍼주기 복지가 아니라 스포츠산업 지원을 통한 의료, 교육, 경제 활성화에 방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실과 동떨어진 스포츠혁신위원회의 정부 권고안을 재검토해 체육계 진영 논리를 타파하겠다는 선언은 기자의 오랜 주장과 일치한다. 체육계를 성범죄와 폭력의 온상으로 취급하거나, 운동하는 학생보다 공부하는 선수를 양성하겠다는 것은 전체를 보지 못하는 바보이거나, 의도를 갖고 한쪽 면만 보는 애꾸눈이다. 체육계는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성범죄와 폭력이 만연해 있지 않다. 설령 일부가 탈선했어도 특별법이나 기구가 왜 필요한가. 아인슈타인이 운동을 잘 할 이유가 없듯이 선수가 전인교육을 받을 이유 역시 없다.

▶명색이 수포츠인데 숫자 얘기가 덜 나와 섭섭할 독자들을 위해 세계의 배팅업체가 내놓은 올해 메이저 대회의 예측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해보자. 먼저 11월 카타르 월드컵. 스마켓은 브라질의 우승 가능성을 가장 높게 점쳤다. 네이마르가 이끄는 브라질은 13.9%의 지지를 얻어 1월 중순 이후 프랑스(12.5%)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4강 후보는 잉글랜드(10.6%)와 스페인(10.4%). 독일(9.5%)과 아르헨티나(9.1%)가 뒤를 이었다. 반면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FC 대한민국은 아직 순위권에 없다.

▶메이저리그에선 LA다저스가 월드시리즈 우승 확률이 높다고 예측됐다. NBC스포츠는 베팅업체 포인츠벳(PointsBet)을 인용해 지난해 4강 다저스의 우승 배당률이 6배로 가장 낮다고 보도했다. 준우승팀 휴스턴(9배)과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은 뉴욕 양키스(11배)가 뒤를 이었다. 우승팀 애틀랜타와 시카고 화이트삭스, 뉴욕 메츠는 배당률 12배로 공동 4위. 류현진의 토론토와 최지만의 탬파베이는 나란히 13배, 김하성의 샌디에고는 14배로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권이다. 꼴찌는 볼티모어와 피츠버그로 우승 확률 250대 1이다.

▶타이거 우즈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SNS에 올린 3초짜리 스윙 영상 하나로 내년 마스터스 우승 확률이 100대 1 밖에서 35대 1로 껑충 뛰어올랐다고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가 보도했다. 그가 나흘간 72홀을 걸어서 완주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지만 ‘우즈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다. 지난해 5월 PGA챔피언십에서 최고령 메이저 우승 기록(50세 11개월 7일)을 세운 필 미클슨(65대 1)의 우승 확률보다 높다. 최상위권은 존 람, 조던 스피스, 더스틴 존슨 순이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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