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銀 ‘급한 불’ 소방수로 투입된 김호철 감독 “섬세한 배구 만드는게 내 첫 임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男배구 지도자때 ‘버럭 호철’ 별명
여자팀 처음 맡아 스타일 변신 한창… “욱하는 모습 마스크로 가려 다행”
동료감독에 여성심리학 책 건네받고, 선수 생일때 장미꽃다발 선물까지
“강압적으로 운동시키던 시절 끝나… 선수들 스스로 하는 배구가 최고”

김호철 IBK기업은행 신임 감독이 22일 경기 용인시 구단 체육관 진열장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최근 구단에서 벌어진 내홍을 수습할 소방수로 투입된 김 감독은 “팀에 합류해 보니 생각보다 분위기가 좋다. 개개인의 능력도 있다. 화합을 잘하면 곧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용인=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김호철 IBK기업은행 신임 감독이 22일 경기 용인시 구단 체육관 진열장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최근 구단에서 벌어진 내홍을 수습할 소방수로 투입된 김 감독은 “팀에 합류해 보니 생각보다 분위기가 좋다. 개개인의 능력도 있다. 화합을 잘하면 곧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용인=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나간 일은 인정하고 잊자. 현재와 미래만 생각하자.”

지도자 경력만 26년인 김호철 IBK기업은행 신임 감독(66)은 16일 선수단과의 첫 만남에서 이 같은 이야기부터 꺼냈다. 자신부터 선수들에게 지난 이야기에 대해 일절 묻지 않았다고 한다. 김 감독은 “밖에서 들은 이야기도 많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은 아니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루빨리 팀을 정상화할까란 생각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구단에서 불거진 내홍 사태에 대해서는 “본분을 지키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답했다.

22일 경기 용인 구단 체육관에서 만난 김 감독은 1시간가량 인터뷰하는 동안 ‘섬세’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언급했다. 과거 남자부 지도자 당시 ‘버럭호철’이라고 불려온 그에게서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단어. 처음 여자부 감독을 맡게 된 김 감독은 “구단의 제안을 받고 하루를 고민했다. 여자 선수들의 섬세함을 따라갈 수 있을까란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배구선수 출신 딸(김미나 씨)의 격려에 결심을 굳혔다는 김 감독은 “사실 배구에서 (현역 시절 자신의 포지션이었던) 세터만큼 섬세한 포지션도 없지 않냐”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18일 흥국생명과의 경기에서 기업은행 감독 데뷔전을 치른 그는 “경기 내내 카메라가 내 욱하는 표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 마스크로 표정을 가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경기 뒤 대신고, 한양대 선배인 김형실 페퍼저축은행 감독(70)에게 ‘여성들을 위한 심리학’ 등 여성 관련 책 2권을 선물로 받았다. 21일에는 2년 차 센터 최정민(19)의 생일을 맞아 장미꽃 20송이를 직접 선물하기도 했다. “앞으로 선수 생일 때마다 꽃집에 가게 생겼다”며 엄살을 떠는 김 감독의 모습에서 ‘섬세호철’의 가능성이 느껴졌다.

V리그 대표 명장인 김 감독이 바꿔 놓을 팀의 새로운 모습도 기대를 모은다. 기업은행은 당장 김 감독의 두 번째 경기인 23일 한국도로공사와의 경기(2-3 패)에서 풀세트 접전을 이어가면서 이전과는 달라진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세계적인 명세터로 이름을 날렸던 김 감독이 조송화(28) 이탈 후 팀의 새 주전 세터가 된 김하경(25), 3년 차 이진(20)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을지도 팬들의 관심거리다. 센터를 주로 맡았던 김희진(30)은 라이트로 기용할 계획이다. 새 외국인 선수 산타나(26)는 아직 체력 문제로 한 달 뒤에나 풀타임 출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새 출발선에서 첫걸음을 뗀 김 감독에게 목표를 물었다. “선수 생활 마지막 3년을 남겨 놓고 비로소 배구의 재미를 깨달았는데 막상 감독이 돼 그 재미를 모르고 살았다.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선수들에게 강압적으로 시켜서 운동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선수들이 스스로 재미를 느껴서 배구를 하는, 감독보다는 선수가 주인공인 그런 배구를 하고 싶다.”

“내 천직은 배구”라고 말하는 그의 오랜 고민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용인=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프로배구#김호철#신임 감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