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 “우리가 ‘고춧가루 부대’ 역할 할 것”[정윤철의 스포츠人]

정윤철 기자 입력 2021-04-17 11:00수정 2021-04-1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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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신태용 감독(51)은 지난달 27일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다. 일주일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종합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폐에 물이 찼기 때문이다. 13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코로나19와 지병(당뇨)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폐에 물이 차는 증세가 생겼다”면서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교민 5명이 코로나19 치료 도중 폐질환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겁이 났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치료가 쉽지 않겠다고 판단한 그는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일정을 잠시 중단하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일반 여객기를 타고 한국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의 소개로 에어앰뷸런스(환자 이송 전용기)를 타고 귀국했다. 신 감독은 “코로나19는 병원에 입원한 뒤 3일 만에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비행기에서 승객이 나를 알아볼 경우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던 사람이라 부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홀로 이용할 수 있는 에어앰뷸런스를 탔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에어앰뷸런스 비용인 1억2800만 원을 자비로 냈다. 인도네시아축구협회는 인도네시아에서의 치료비용만 지원했다고 한다. 신 감독은 “의사 2명, 간호사 1명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7시간 반을 날아 한국에 왔다. 의료진들이 수시로 혈압 등 신체 상태를 체크해주고 따뜻한 식사를 제공해줘 안정적인 상태로 귀국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 용인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신 감독은 다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그는 “코로나19를 앓는 과정에서 몸무게가 7kg이나 줄었지만 지금은 휴식을 잘 취해 4kg 가량 살이 쪘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에어앰뷸런스 안에서도 축구에 대한 생각과 고민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신 감독은 “건강한 모습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기 위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스트레스와 몸 관리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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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왼쪽)이 11일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자신의 애제자인 아스나위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아스나위는 프로축구 K리그에 진출한 첫 번째 인도네시아 선수다. 신태용 감독 인스타그램


● 고국에서 만난 제자
신 감독은 11일 프로축구 K리그2(2부 리그) 안산과 전남의 경기(1-0 전남 승)를 보기 위해 안산 와스타디움을 찾았다. 자신이 인도네시아 대표팀에서 지도하고 있는 제자로 올 시즌부터 안산에서 뛰는 측면 수비수 아스나위 망쿠알람 바하르(22·선수 등록명 아스나위)의 경기력을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아스나위는 K리그에 진출한 첫 번째 인도네시아 선수로 신 감독이 안산 측에 영입을 적극 추천했다. 안산의 구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은 아스나위의 선전(善戰)을 기원하는 인도네시아 팬들의 댓글로 도배될 때가 많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한 방송국이 아스나위의 경기 중계를 위해 K리그 중계권을 구입하기도 했다.

신 감독은 “TV로 안산의 경기를 볼 수도 있지만 방송 중계카메라는 볼을 쫓아다니기 때문에 특정 선수의 경기력을 체크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아스나위가 볼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수비 가담은 적극적으로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경기장을 직접 찾았다”고 말했다. 이날 선발로 나선 아스나위는 빠른 발을 앞세워 측면에서 날카로운 돌파력을 보여줬다. 신 감독은 “아스나위가 한국 무대에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투지와 근성이 뛰어난 선수인 만큼 잘 성장한다면 K리그1(1부)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스나위는 신 감독이 추진 중인 인도네시아 대표팀 세대교체의 핵심이다. 2019년 12월 인도네시아의 3개 연령별 축구대표팀(국가대표팀, 23세 이하 대표팀, 20세 이하 대표팀)의 사령탑이 된 신 감독은 그동안 20세 이하와 23세 이하 대표팀 훈련에 집중했다. 기름에 튀긴 음식이 많았던 식단을 고단백 식품 위주로 바꿨고, 반복적인 왕복 달리기 등을 통해 체력과 지구력을 키우게 했다. 또한 소집 훈련을 시작할 때와 종료할 때 신체 사진을 찍어 선수들 스스로 체형 변화를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

체력이 약해 후반 25분 이후 실점을 하며 무너질 때가 많았던 인도네시아 대표팀은 신 감독 지도로 조금씩 달라졌다. 지난해 10월 신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20세 이하 대표팀은 유럽 전지훈련에서 북마케도니아(4-1 인도네시아 승)를 꺾는 등 유럽팀을 상대로 5승 3무 5패의 성적을 남겼다. 신 감독은 “유럽팀을 꺾으면서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현재 아스나위는 인도네시아 국가대표팀과 23세 이하 대표팀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신 감독은 “선발로 나설 베스트11을 작성할 때 가장 먼저 이름을 쓰는 선수가 아스나위”라면서 “내가 지휘봉을 잡은 이후 아스나위 등 젊은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면서 세대교체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태용 감독은 5월 31일부터 재개되는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 강한 체력과 조직력을 앞세운 축구를 구사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신 감독이 인도네시아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 “고춧가루 부대 역할 기대”
신 감독은 코로나19 여파로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가 열리지 못하면서 아직 국가대표팀을 이끌고는 공식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5월 31일부터 재개되는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이 신 감독의 국가대표팀 사령탑 데뷔전이 될 전망이다.

인도네시아가 속한 G조에는 ‘쌀딩크’ 박항서 감독(62)이 이끄는 베트남과 태국,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UAE)가 있다. 2차 예선은 각 조(총 8개 조) 1위가 최종 예선으로 직행하며, 각조 2위 중 성적 상위 4개국이 최종 예선에 합류한다. G조는 베트남이 3승 2무(승점 11)로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인도네시아는 신 감독이 부임하기 전에 5패(승점 0)를 당해 최하위(5위)다.

베트남, 태국(3위·승점 8), UAE(4위·승점 6)와의 2차 예선 3경기가 남은 인도네시아는 사실상 최종 예선 진출이 좌절된 상태다. 하지만 신 감독은 아스나위 등 젊은 선수들의 패기를 바탕으로 인도네시아가 ‘고춧가루 부대’ 역할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각오다. 그는 “인도네시아는 월드컵 진출이 힘든 상태지만 남은 2차 예선 경기를 통해 우리 팀이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조 상위권의 승점 차가 얼마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지는 팀은 우리처럼 월드컵에 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신태용 감독#고춧가루 부대#k리그#2022 카타르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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