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감독은 지면 아픈 자리, 김상우 전 우리카드 감독의 고백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8월 10일 05시 30분


김상우 전 우리카드 감독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남자배구 해설위원으로 돌아온다. 2017∼2018시즌을 
끝으로 V리그 사령탑에서 물러난 그는 최근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공부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김상우 전 우리카드 감독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남자배구 해설위원으로 돌아온다. 2017∼2018시즌을 끝으로 V리그 사령탑에서 물러난 그는 최근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공부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KBS-TV 배구 해설위원으로 배구계 컴백
AG 금메달 변수는 상대 범실 뿐…결국 우리 팀이 더 단단해져야
앞만 보고 바쁘게 살았던 감독생활,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복기 중
감독이라는 고독한 자리, 아픈 패배를 돌이켜보며 또 배운다

2018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배구 팬에게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다. 김상우 전 우리카드(남자배구) 감독이 마이크 앞으로 돌아온다. 금메달을 노리는 남자배구대표팀의 경기를 KBS-TV 해설위원으로 현장에서 설명한다. 2017~2018시즌을 끝으로 V리그를 떠난 그가 예상보다 빨리 배구계로 돌아온 것은 그만큼 배구해설가 김상우의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는 “3년 만의 방송 복귀다. 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겨울에도 배구 붐이 일 것이다. 판에 박힌 해설보다는 그 상황에서 선수들은 어떤 심리로 플레이를 하고 시청자는 어떤 입장에서 봐야 하는지를 이해시키고 싶다. 우리 대표팀이 잘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백하자면 기자가 처음 배구를 취재할 때 그는 가장 많은 도움이 됐던 해설가였다. 현장에서 경기를 보면서 그의 해설을 듣고 있으면 어려운 상황이 명확하게 정리됐다. 날카로운 분석과 풍부한 배구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기사에 쓸만한 임팩트 있는 내용이 많았다.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때는 커다란 종이에 나만 알아보는 내용으로 빽빽하게 적었다. 자료준비에 몇 시간씩 걸렸다. 익숙해진 뒤에도 방송 한 번을 위해 최소 3시간 이상은 준비했다. 그것이 시청자를 위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우리 선수의 정보도 중요하지만 상대국가 선수들의 정보도 중요하다. 우리 대표팀 전력분석관의 자문도 구하고 있다”며 철저한 준비를 강조했다.

● 우리카드에서 물러난 뒤 맞이한 모처럼의 여유

우리카드와 재계약을 포기한 이후 모처럼 쉬고 있다. 아직 무엇을 할지 어떤 인생을 살아야할지 결정된 것은 없다.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여행도 가고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도 만나고 운동도 하면서 여유롭게 지내려고 한다.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바삐 살았다”고 했다.

이런 그가 들려준 스토리 하나. “감독에서 물러난 뒤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혼자 제주도 여행을 갔다. 아름다운 풍광을 천천히 즐기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내 자신을 보니 바쁜 걸음으로 뛰다시피 하고 있었다. 누가 나를 찾을 일도 없는데 그랬다. 더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도 보고 경치도 감상하면서 즐길 수도 있는데 여전히 나 자신에게 여유를 주지 않고 있었다. 이런 서두름 때문에 그동안 내가 놓치고 지나간 것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요즘 자주 감독 생활동안 했던 일을 복기한다. 그때 왜 그런 결정을 했고, 당시 어떤 생각이었는지 등을 통해 자기를 돌아본다.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 속에서 새로운 것도 배운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때론 불편하지만 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워야 발전한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실패를 한다. 그 실패 속에서 뭔가를 배우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상우 전 우리카드 감독. 스포츠동아DB
김상우 전 우리카드 감독. 스포츠동아DB

● 우리카드에서 느꼈던 벽과 아쉬움

모든 프로팀 감독은 우승을 노린다. 해마다 V리그 남자부 7개 팀의 감독 가운데 한 사람만 성공하고 나머지는 실패를 경험한다. 그는 우리카드 사령탑으로 3년간 봄 배구에 나가지 못했다. 결과로 보자면 실패다.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벽’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내가 가기 전에 우리카드는 한 시즌에 3승을 했다. 팀도 해산하려고 했다. 한동안 숙소가 없어 지방에 머물면서 선수들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는데 그 과정이 힘들었다. 열심히 해서 2015년 컵 대회에 우승하고 정규리그 때도 어느 정도까지는 팀을 끌어올릴 수 있었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어느 단계에 오자 벽이 느껴졌다.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해결책은 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하지 못했고, 결국 주저앉았다. 그것 또한 감독의 능력이자 책임이지만 돌이켜보면 아쉬웠다.”

그는 예를 들어가며 벽의 의미를 설명했다.

“삼성화재와 경기를 하면 항상 라이트에서 뚫렸다. 박철우가 우리 블로킹 위에서 때렸다. 우리 레프트들이 키가 작아 아무리 점프해도 그 높이를 따라잡지 못했다. 수비 포메이션을 잘 짜고 준비를 해도 우리가 가진 한계 이상의 공격이 오면 답은 없다. 그런 면에서 배구는 개인적인 운동이다. 단순하지만 우리 위로 상대가 공격을 하면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다. 농구 축구 야구와는 다르다.”

● 국제무대에서 고전하는 남자배구의 길을 묻다

아시안게임이 코앞이라 우리 대표팀의 성적이 궁금했다. “반드시 결승전에 간다. 가야만 한다”고 했다. 그는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고전했던 우리 대표팀의 현실도 언급했다.

“요즘 김호철 감독님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속도 상하셨을 것이다. 결국 감독은 성적을 통해 결과를 보여줄 뿐이다. 결과를 내지 못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력만 했을 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분처럼 경험이 많으신 분도 배구 선진국과 상대하면서 한계를 느끼셨을 것이다.”

그에게 지금 국제무대에서 부진한 한국배구의 해결책을 물었다. 그는 “내가 이런 말을 할 처지인지 모르겠다”면서도 정성껏 대답을 했다.

“상대의 범실 외에는 변수가 없기에 결국 우리 팀을 더욱 단단히 만들고 기본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 배구는 스피드와 높이의 경기다. 우리 배구가 최근 전체적으로 빨라졌지만 상대팀들은 더 빨라지고 높아졌다. 국제무대에서 성공하려면 더욱 기본기가 탄탄해야 하고 완벽한 연결을 통해 버텨야 한다. 갈수록 높이와 스피드가 상대보다 떨어지면서 우리만의 배구 색깔이 옅어지고 있다.”

그의 말을 듣다보니 우리 배구를 향한 진단과 해결책은 묘하게도 삼성화재 신치용 고문의 것과 많이 닮았다.

김상우 전 우리카드 감독. 스포츠동아DB
김상우 전 우리카드 감독. 스포츠동아DB

● 팬들은 모르는 감독이라는 고독한 자리

인터뷰 도중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감독은 지면 아프다고 했다.

“우리 팀과 선수가 못하면 감독은 괴롭다. 왜 못하냐고 팬들은 질타하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방법을 찾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배구는 이기적이고 철저히 개인적인 경기다. 물론 그 상황조차도 감독의 책임이고 뭔가 대책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방법이 없을 때는 힘들다. 못 이기는 감독의 속내는 누구도 모른다. 자존심의 상처가 크다. 팀이 지면 감독은 아프다. 그래서 지금껏 아픔을 느끼고 있다.”

너무도 솔직한 얘기였지만 글로 운동을 배운 사람에게는 그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나지 않았다. 더 구체적인 표현을 부탁했다.

“경기에 지고나면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온 몸이 몸살에 걸린 듯 아프다. 거의 기절하다시피 한다. 감독은 이기고 지는 것으로 그 사람의 능력이 평가되니까 더 아프다. 특히 가족에게 미안하다. 아빠가 지면 애들도 풀이 죽는다. 그래서 가족에게 경기장에 오지 말라고 했다. 감독은 잘하면 좋고 대우받지만 못하면 자존심 상하고 창피한 직업이다.”

감독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만들어진다. 패배를 통해 배우고 그 때의 경험과 교훈을 새로 실험해보고 결과로 확인하는 지난한 작업을 거쳐 명장이라는 호칭을 얻는다. 신치용 고문은 “한국전력 코치시절 수많은 패배를 통해 어떻게 하면 지지 않는지를 배우고 공부했다. 패하지 않는 배구가 내 출발점”이라고 했다. 김상우 감독은 4년 반의 감독 기간동안 89번을 졌다. 더 아파하면서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얻기를 바란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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