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봉 묵직하네”… 성화 옮겨붙자 모든 게 달라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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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기자 서울지역 봉송 체험기

본보 이헌재 기자가 15일 서울 강남 도산대로에서 평창 올림픽 성화 봉송을 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본보 이헌재 기자가 15일 서울 강남 도산대로에서 평창 올림픽 성화 봉송을 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성별도, 연령대도, 하는 일도 모두 다른 21명이 15일 오전 한자리에 모인 곳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이었다. 이곳은 13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되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서울 구간 성화 봉송 주자들의 집결지다. 일단 이곳에 모여 봉송구간으로 이동한다.

오전 9시 40분. 실제 성화 봉송 시간은 낮 12시 8분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약 3시간 전부터 주자들이 모였다. 주자 등록을 한 뒤 성화 봉송용 유니폼과 모자, 장갑 등을 지급받았다. 곧바로 성화 봉송 교육이 시작됐다. 요점은 두 가지였다. “성화봉이 뜨거우니 조심해라”, 그리고 “마음껏 축제를 즐겨라”.

봉송 주자들을 태운 버스는 성화 봉송 구간인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로 향했다. 주자들은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버스 안에서 대기했다. 버스는 주자들을 따라 조금씩 이동했다. 주자들은 차례로 내려 성화를 들고 달린 뒤 버스에 다시 올랐다. 이전 주자가 다음 주자의 성화봉에 불을 붙이면 그 성화봉을 들고 달렸다. 성화봉 안에는 가스가 들어 있어서 조금만 기울여도 불이 잘 옮겨 붙었다. 봉송을 마친 주자의 성화봉을 안전 요원이 건네받아 성화봉에 달린 가스밸브를 닫아 불을 껐다. 주자들이 들고 온 성화봉은 버스 안에 있던 성화봉 꽂이에 나란히 꽂혀 보관됐다. 이후 안전요원들이 성화봉을 모두 모아 성화봉 안에 들어있던 가스통을 분리했다.

버스 안 분위기는 어색했다. 앳된 얼굴의 10대 여중생과 머리 희끗한 사장님이 첫 만남부터 화기애애해지기 힘든 건 당연했다. 21명 가운데에는 남매 듀엣 악동뮤지션의 이수현 양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을 걸진 못했다.

분위기가 다소 풀어지기 시작한 것은 도산대로 근처에 도착할 즈음이었다. 버스 차창 밖으로는 풍물놀이패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성화 봉송 주제곡인 ‘Let Everyone Shine’도 울려 퍼졌다. 서서히 흥이 오르기 시작했다. 자기 차례가 된 주자가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응원의 박수가 쏟아졌다. 코카콜라, 삼성전자, KT 등 성화 봉송 파트너사들이 마련한 대형 차량에서는 춤과 음악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축제가 따로 없었다.

기자의 차례가 됐다. 성화봉을 들고 도로 위에서 ‘토치 키스’(앞 주자가 다음 주자에게 불을 붙여주는 것)를 기다리는 사이 한 시민이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성화봉을 들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다.

약 1.3kg인 성화봉은 한 손으로 들기엔 다소 무거웠다. 하지만 중국 영자신문 차이나 데일리의 레레 기자가 건넨 성화가 ‘팟∼’ 소리와 함께 기자의 성화봉으로 옮겨 붙은 순간 모든 게 달라졌다. 온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듯했다. 활활 불붙은 성화는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100m가량 언덕길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성화봉의 무게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 듯했다. 인도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외치는 “평창, 파이팅” 응원이 힘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자 이지연 코카콜라 이사에게 성화를 전달한 뒤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렇게 큰 박수를 받아본 게 얼마만인지 잘 모르겠다. 성화 봉송을 끝낸 주자들이 누구랄 것도 없이 먼저 하이파이브를 요청했다. 처음의 어색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모두를 빛나게 하는 불꽃’이라는 평창 성화 봉송 슬로건처럼 모든 사람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다시 국립극장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로의 진심을 나눴다. 김윤철 군(17)은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것만 해도 기쁜데, 성화 봉송까지 하게 돼 행복하다”고 했다. 임주희 송양유치원 교사(27)는 “아이들에게 평창 올림픽을 좀 더 친근하게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광현 도미노피자 회장(59)은 “전 국민이 피자를 시켜 드시면서 올림픽을 관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박장순 레슬링 국가대표팀 감독(50)은 “우리 선수들이 많은 메달을 따 고생한 만큼 보상받길 바란다”고 했다.

평창 올림픽 성화는 16일까지 서울에 머문 뒤 19일부터는 파주, 연천 등 경기 북부 지역과 비무장지대(DMZ)로 옮겨 평화의 메시지를 담는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성화 봉송#평창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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