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Medical Story] 미식축구는 뇌손상의 스포츠?

스포츠동아 입력 2017-08-17 05:45수정 2017-08-17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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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뇌손상 반복…만성 외상성 뇌병증 유발
기억상실·판단력 저하 등 퇴행성 질환
쎄이아우처럼 최악의 경우 자살시도도

2012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 평화롭던 마을에 한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총소리가 난 곳은 대저택. 널브러진 권총과 함께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사인은 권총자살. 신원확인 결과 사망자는 주니어 쎄이아우로 밝혀졌다. 그는 미식축구(NFL) 샌디에고 차저스의 전설적인 스타였다. 1990년대 최고의 라인백커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스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많은 스포츠팬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미식축구는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그것과 차이가 있다. 미식축구는 야구(MLB) 농구(NBA) 아이스하키(NHL)와 함께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4대 프로스포츠다. 그 중에서도 미식축구의 인기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인기 잣대 중의 하나인 TV 시청률을 보면 MLB 정규시즌의 경우 대략 2% 대다.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시카고 컵스, LA 다저스 등 인기 팀이 월드시리즈에 올라와야 10% 대를 찍는다.

NHL은 MLB보다 못한 경우가 많고, NBA는 정규시즌 경기가 5%의 시청률이 나오면 대성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NFL은 정규시즌 경기가 10%를 훌쩍 넘는다. 포스트 시즌엔 20% 이상, 결승전인 슈퍼볼은 30% 선을 넘는다.

스포츠 스타에게 인기는 곧 돈이고 미래다. 그런 최고 인기 스포츠인 미식축구 스타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에 팬들이 쇼크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주니어 쎄이아우와 같은 유명 미식축구 선수의 불행한 선택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1980년대 시카고 베어스 전성기 시절 주축 수비수였던 데이븐 듀어슨도 같은 선택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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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적인 뇌손상은 만성 외상성 뇌병증 유발

위 사건들의 원인을 연구하던 의학자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뇌손상이었다. 미식축구에서 수비수들의 목표는 단순히 보면 공을 가지고 있는 선수를 쓰러 넘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태클 등 선수들끼리 강력한 충돌은 기본이다. 아무리 헬멧을 쓰고 한다 하더라도, 뇌진탕 등 뇌손상을 줄 만한 상황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격한 경기를 10년 이상 하다 보면, 대부분 선수들이 만성적인 뇌손상 증상을 호소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경기 때 가장 오래 공을 들고 있는 포지션 쿼터백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1993년 슈퍼볼 MVP인 트로이 애이크먼(댈러스 카우보이스), 버펄로 빌스 소속으로 팀을 4년 연속 슈퍼볼로 이끈 짐 켈리, NFL 최고의 왼손잡이 쿼터백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스티브 영(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등이 선수 시절 여러 차례의 뇌진탕 경험과 증상들을 언급했다.

실제로 주니어 쎄이아우의 뇌 조직검사를 해보니 CTE(만성 외상성 뇌병증)가 확인됐다. 이제 CTE는 미식축구계에선 생소한 용어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선수노조의 요구로 선수들의 뇌손상 연구가 광범위하게 추진됐고, 많은 연구 결과 미식축구 선수들과 CTE는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CTE는 뇌진탕 등 반복적인 손상을 받은 뇌에서 퇴행성으로 나타나는 질환을 일컫는다. 권투선수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미식축구 선수들을 중심으로 레슬링, 아이스하키, 권투 등 상대와 몸 접촉이 많은 선수들에게 비교적 흔하게 발견된다. 반복적인 뇌 손상 후 10년 정도 뒤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주의력 결핍, 어지럼증, 두통 등의 증상을 호소하지만 증세가 진행되면서 기억상실, 판단력 저하로 이어진다. 진행성 치매, 운동장애, 언어장애에 이어 최악의 경우 자살시도까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복적인 뇌손상을 피하는 것만이 유일한 예방법이다. 뇌손상 때 뇌가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그나마 예후가 좋은 것으로 연구됐다.

● 오바마 “나에게 아들이 있다면 미식축구를 못하게 했을 것”

최근 이러한 점을 우려해 미식축구계는 뇌손상 방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선수들의 뇌를 보호하기 위해 경기 규칙까지 바꿨다. 머리 쪽을 향하는 태클을 금지하고, 공을 가지지 않은 선수를 향한 심한 태클도 금했다. 경기 중 충돌 이후, 뇌진탕 증상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일정 프로토콜을 통과하지 못하는 이상 다시 경기에 투입되지 못하는 조항도 만들었다. 그러나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선수들에게‘뇌손상 예방 규칙’들은 뇌 속에서 사라지는 모양이다. 실제 최고의 운동능력을 가진 선수들이 빠른 속도로 펼치는 경기에서 뇌에 손상이 전혀 안 가게끔 태클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성공을 위해 뇌진탕을 당해도 증상을 숨기고 경기에 뛰는 경우가 많다. 실제 많은 선수들은 서서히 진행되는 뇌손상보다 경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무릎, 발목, 어깨 등의 부상을 더 두려워한다.

2013년 1월 슈퍼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만약 내게 아들이 있다면, 미식축구를 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오바마는 말했다. 두 딸만 있는 오바마에게는 아들이 없어 ‘만약’이라는 전제가 붙었지만,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그 것도 사적인 이야기가 아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언급한 것은 미국인들이 미식축구와 뇌손상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방증해 준다.

8월이 가면 곧 미식축구의 계절이 온다. 미국인들이 지상 최고의 스포츠로 뽑는 미식축구. 이 익사이팅한 경기가 ‘뇌손상의 스포츠’라는 오명을 벗고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프로야구 LG트윈스 필드닥터·한림대 성심병원 정형외과 조교수 이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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