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 더 강하게 만든 이정철 감독의 책무와 번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6월 10일 0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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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 스포츠동아DB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 스포츠동아DB
외국인 트라이아웃에 이어 프리에이전트(FA) 이적, 보상선수 원샷 지명으로 이어진 여자프로배구의 역대급 오프시즌이 일단락됐다. 손익계산이 분주한 가운데 배구계의 중평은 ‘승자는 IBK기업은행’이라는데 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2012~2013시즌부터 5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올랐고, 이 중 2016~2017시즌을 포함해서 총 3차례 우승을 해내며 ‘왕조’를 건설한 IBK기업은행은 ‘더 짜임새 있는 전력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프런트의 전폭적 투자와 이정철 감독의 혜안이 어우러져 약점이 최소화된 이상적 팀 밸런스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 감독은 영욕을 같이 했던 리베로 남지연(34)을 떠나보내는 인간적 번민도 가슴에 품어야 했다.

● 우승전력 이상의 전력 구성한 IBK

IBK기업은행의 팀 세팅은 프랜차이즈 스타인 FA 김희진의 잔류라는 사활적 목표를 완료하는 데서 출발했다. 그 다음은 외부로 눈을 돌려 센터 김수지와 세터 염혜선을 보강했다. 김수지가 들어오며 김희진의 활용폭이 넓어졌다. 이 감독은 “김희진을 주로 라이트로 기용하되, 현대건설이나 도로공사 등 높이가 있는 팀과 만나면 센터 활용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베로 남지연이 보상선수로 흥국생명으로 떠난 공백은 노란, 채선아로 메운다. 이 감독은 “채선아는 점프 훈련을 아예 안 시키고 있다”는 말로 전업 리베로 개조작업에 본격 착수할 방침을 밝혔다. 아무래도 남지연 만큼의 리시브 안정감은 어렵겠지만 이 감독은 레프트의 수비범위를 확장해 커버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기존의 김미연에, 박정아(도로공사) 보상선수로 온 고예림을 선택한 것은 ‘화룡점정’이다. 외국인 레프트 리쉘에, 두 토종 레프트를 상황에 따라 선택해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이 감독이 잠재력을 알아보고, 일찌감치 고등학교 때부터 국가대표로 추천한 세터 염혜선까지 IBK기업은행 유니폼을 입었다. 염혜선-이고은 투 세터 시스템이라면 질과 양에서 아쉬울 일이 없다.

IBK기업은행 염혜선-김수지(오른쪽). 사진제공|IBK기업은행
IBK기업은행 염혜선-김수지(오른쪽). 사진제공|IBK기업은행

● 이 감독이 8번 유니폼을 비워둔 심정

감독의 책무는 팀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IBK기업은행 2017~2018시즌 우승전력은 물론, 장기적으로도 강한 팀이 될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 감독은 ‘위악자(僞惡者)’가 되는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IBK기업은행의 프랜차이즈 레전드라 할 남지연을 보호선수로 묶지 않은 것이다. 설마 했어도 가슴 한편에 불안감이 있었는데 그런 예감은 적중하는 법이다. 흥국생명이 예상을 깨고 보상선수로 남지연을 택한 것이다. 남지연이 품을 떠나기까지 많은 진심이 오고 갔다. 다만 흥국생명 선수인 남지연의 신분을 가장 먼저 생각했을 이 감독은 바깥에는 말을 아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남지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답게 행동했다는 점이다. 남지연은 9일 “흥국생명과 첫 인사를 했다. 이 팀에서 최선을 다해서 보탬 되는 선수가 되겠다. 이제 흥국생명 남지연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떠난 선수임에도 IBK기업은행과 이 감독은 흥국생명이 불편하지 않을 범위에서 남지연을 위한 예우 한 가지를 해주기로 결정했다. 남지연이 IBK기업은행에서 달았던 8번 유니폼을 어떤 선수도 입지 않도록 조치한 것이다. IBK기업은행은 은퇴한 김사니의 9번 유니폼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IBK기업은행이 남지연의 재영입을 염두에 두고, 취한 포석은 결코 아니다. 흥국생명 선수인 남지연의 유니폼을 벌써 영구결번으로 정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팀을 위해 커리어를 헌신한 남지연을 위한 이 감독의 성의 표시에 가깝다. 이제 상황은 일단락됐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인생사에서 그저 오늘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프로의 운명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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