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이 만난 사람] 신치용 단장 “현장 복귀 생각 없냐고? 제자들이랑 얼굴 붉힐 일 있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11월 30일 05시 45분


한때 최고의 팀을 이끌었던 명장은 이제 구단을 책임지는 단장의 자리에서 코트를 바라보고 있다.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 여전히 성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지만, 후배 감독들을 지켜보는 재미는 그를 미소 짓게 한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한때 최고의 팀을 이끌었던 명장은 이제 구단을 책임지는 단장의 자리에서 코트를 바라보고 있다.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 여전히 성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지만, 후배 감독들을 지켜보는 재미는 그를 미소 짓게 한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신 치 용 삼성화재 배구단 단장

제자 감독들 이기고 쉽게 좋아할 수 없었지
감독 마지막 시즌에도 그게 가장 힘들었어

우승 DNA? 사라진 게 아니라 약해진 거지
신인드래프트서 10년간 꼴찌로 뽑았잖아

몰빵도 전술…타이스, 에이스 기질 갖춰야
구단 지원? 관중동원 말고 달라진 건 없어


삼성스포츠가 아프다. 단순 찰과상이 아니다. 내상이 깊다. 화산 폭발하듯 여기저기서 신호가 온다. 그야말로 종목 불문이다. 시점이 묘한데, 제일기획으로 운영주체가 넘어가면서 통증이 악화됐다. 결국 부자 망해도 3년 가지 못한 것이다. 프로야구(삼성라이온즈)의 2016시즌 순위는 9위다. 참 낯설다.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의 저력은 온데 간 데 없다. 프로축구(수원삼성)는 처음으로 상위 스플릿 진출에 실패했다. 자존심 상할 일이다. 구단도 팬도 허탈하다. 프로배구(삼성화재)도 하락세다. 자타공인 최고의 명문인 삼성화재는 2년 연속 정상에서 밀려났다.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모양새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런 삼성화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신치용(61) 제일기획 스포츠구단 운영담당 부사장 겸 단장이다. 한 몸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지금도 그를 부를 때 감독 타이틀이 입에 착착 감긴다. 인터뷰하면서는 감독과 단장 호칭을 외줄 타듯 오갔다. 뛰어난 지략가 신 단장은 국내 지도자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다. 한국전력에서 코치생활을 한 뒤 1995년 말 삼성화재 지휘봉을 잡았고, 지난해 중순까지 20년간 쭉 한 팀을 지도했다. 단일팀 최장수 감독이다. 아마추어 시절인 슈퍼리그 9연패의 위용과 프로배구 V리그 8회 우승 신화는 그가 얼마나 화려한 시절을 보냈는지를 대변해준다. 쉽게 말해, 이기고 우승하는데 도가 튼 감독이다. 국내 최고의 승부사에서 구단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변신한 신 단장을 만났다.

-현장을 떠난 지 2시즌째다. 단장이 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현장에 대해 말을 할 수 없기에 답답하다. 훈련방식이나 선수기용, 전술 등에 대해선 일체 말하지 않는다. 간섭으로 느껴질 수 있으니 어렵다. 정말 아니다 싶으면 전력분석관에게 전화해 라인업의 앞뒤를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정도만 얘기한다. 사실 올 시즌에는 딱 두 번 그랬고, 지난 시즌에는 한 번도 안 했다. 내가 삼성화재 감독을 20년을 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풀어갈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내 할 일은 팀 경영이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코칭스태프, 선수, 프런트 모두 마찬가지다. 다만 조금 나태해진 모습을 보이면 자극을 통해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래도 감독 할 때가 좋긴 좋더라.(웃음)”

-감독으로서의 좌우명과 단장으로서의 좌우명은?

“감독시절에는 땀 외에는 믿어선 안 된다는 것이 평생의 지론이다. 신한불란(信汗不亂), 땀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단장으로선 정도 경영이다. 무엇이든 바르게 해야 한다. 훈련, 경기, 팀 운영도 기본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물러나서 보면 더 잘 보인다는 말이 있다. 감독 때와 지금, 달라 보이는 게 있나?

“배구를 50년간 했다. 경기, 팀 운영 모두 잘 보인다. 다 경험을 했으니까. 하지만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되니까 잘 보이면서도 답답하긴 하다.(웃음)”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다른 감독들의 지도 스타일도 보이나.

“재미난 게 다들(감독들) 자기가 선수 때 잘했던 것을 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선수 때 자기가 잘했던 것을 많이 기억하고 이를 선수들에게 요구하더라. 자기가 좋아했던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팀을 어떻게 운용해야 문제가 없고,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경험 속에서 배우는 것 같다.”

-여전히 현장이 그립고 몸이 근질근질하지 않나? 다시 지휘봉을 잡을 확률은?

“사람 일은 모른다는 전제를 달아놓고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지금 제자들과 얼굴 붉히고 한다는 게 두렵다. 내가 젊은 나이도 아니고. 물이 흘렀으면 그냥 흐르는 게 좋다. 유유히 흘러가는 게 낫다고 본다. (다시 지휘봉을 잡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 감독직에서 물러나 쉬다가 다시 지휘봉을 잡는 것은 문제없다. 오히려 더 선수를 품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단장 또는 사장을 지낸 뒤 다시 감독을 한다는 것은 잘 모르겠다. 물이 흐르는 대로 놓아두는 게 맞다. (감독) 마지막 시즌에도 가장 힘들었던 게 제자들과 맞붙어 이겼을 때 쉽게 좋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삼성화재가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많다. 삼성화재의 우승 DNA가 사라진 것인가?

“우승 DNA라? 선수가 많이 바뀌었으니, DNA도 약해졌을 수 있다. 선수가 약하다 보니 외국인선수에게 많이 치우칠 수밖에 없다. 사실 (우승을 많이 하다보니) 신인드래프트에서 10년간 꼴찌로 뽑았다. 다른 팀에서 우리 팀과 트레이드는 안 해준다. 삼성화재와 트레이드 해주면 역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박철우도 현대캐피탈에서 데리고 왔고, 류윤식 등도 다른 팀에서 데려온 선수다. 일단 지금 공격을 해줄만한 선수가 없다. 박철우 있을 때는 좀 나았는데, 지금은 어려움이 있다. 성적 역순 드래프트이고, 우승을 오래 했기 때문에 그 후유증은 분명히 있다. 외국인 선수에게 공격이 치우쳤는데, 당연한 일이다. 또 내 후임감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임도헌 감독은 선수 구성보다, 높아진 기대치에 힘든 것이다. 그래도 임 감독은 성실한 사람이라 잘할 것이다.”

-여전히 몰빵배구에 많이 의존한다는 평가다.

“몰빵배구라는 단어는 우리가 외국인선수에게 의존해 우승하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팀들이 만든 것이다. 지난 시즌 시몬(OK저축은행)과 올해 여자대표팀에서 김연경이 때린 점유율이 같다. 가빈이 캐나다국가대표로 뛸 때 독일전에서 점유율 68%를 찍었다. 세터와 대각선에 서는 자리는 점유율 40% 안 넘어가면 공격수로서 능력이 없는 것이다. 원래 그 정도로 (점유율이)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배구라는 종목의 구조가 그렇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30%씩 삼각편대가 해결해주면 좋지. 구성원이 안 되면 그렇게 못 한다. 보통 삼성화재 우승할 때 외국인선수 점유율은 40% 후반이다. 그것도 전술 가운데 하나다. 몰빵은 능력 있는 공격수를 많이 쓰는 전술의 하나일 뿐이다. 토탈배구, 높이배구, 분업배구, 스피드배구 등은 전술이다. 몰빵은 분업배구를 폄훼하기 위한 단어다. 물론 다같이 하는 배구, 토탈배구가 보기 좋겠지만 말이다.”

-지난 시즌 가장 미흡했던 부분은? 올 시즌 전망은?

“우리는 현대캐피탈, OK저축은행에 밀렸다. 지난 시즌 3위도 못했다는 생각 안 한다. 올 시즌도 3위 이내라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대한항공, 현대캐피탈이 1∼2위 전력이다. 3∼4위는 한국전력과 우리카드, 삼성화재가 싸울 것이다. 다 비슷비슷한데, 포스트시즌에 누가 나갈지 궁금하다. 외국인선수가 안 터지면 팀이 좋은 성적을 내기 쉽지 않다.”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트라이아웃으로 뽑은 외국인 선수 타이스에 대한 평가는?

“타이스는 자기가 보조 공격수라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다. 에이스라는 생각을 갖도록 요구하라고 전달했다. 특히 우리 팀에서는 타이스가 에이스로서 근성을 갖고 역할을 해줘야 한다. 중국 전지훈련 중에 보니 자기가 공격할 생각을 안 하고 커버할 생각을 하더라. 에이스 기질을 가져야 한다.”

-외국인선수 관리에 있어서 삼성화재를 따라갈 팀이 없다고 하는데.

“관리 노하우가 있다. 팀을 위해서 지킬 것을 확실히 지키면 대우도 확실히 해준다. 때론 외국인선수에게 지고 들어가면서 우리 것을 요구한다. 네가 필요하다,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 외국인선수는 높이와 힘이 있기 때문에 훈련하면 실력이 금방 향상된다. 조금만 챙겨주면 된다. 그러면 죽기살기로 하더라.”

-구단 지원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는데?

“우리 스포츠 문화가 정상화돼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거품이 많다. 지금은 정상화되는 과정이다. 거품이 빠지고, 양질의 경기로 가야지 이상한 쪽으로 가선 안 된다. 구단 지원은 달라진 것 하나도 없다. 배구만 보면 10원도 달라진 것이 없다. 딱 하나는 삼성화재 시절(제일기획 이관 전)처럼 응원을 많이 못 나온다는 것이다. 대전에서 경기할 때는 대전 삼성화재 연수원에서 좀 오지만, 관중동원이 쉽지 않다.”

-공익근무를 마친 박철우의 복귀가 코앞인데, 컨디션은 어떤가?

“몸 상태는 60∼70%다. 임도헌 감독에게는 박철우를 믿지 말라고 했다. 2년의 공백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주말 원정 떠날 때 선수들과 함께 움직이라고 했다. 심리적으로 화합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래야 내년 1월 3∼4라운드 때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다.”

인터뷰 말미에 현재 머릿속 고민과 걱정거리를 물었다. 그는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우선 우리 팀 성적이다. 박철우가 돌아와서 잘해야 한다. 요즘은 엔트리가 3명이 들어오면 3명이 나가는 구조다. 올해 신인드래프트에서 수련선수 제외하고 1명만 뽑은 이유가 있다. 기존 선수를 내보내는 것이 더 걱정이다. 선수들이 은퇴하고 어떻게 살아갈지도 걱정되더라. 나는 평생 배구만 했으니 어떻게든 배구에 기여해야 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배구단 운영과 지도다. 어떻게든 도움이 되는 쪽에 서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정말 쪽 팔리게 살지 말자는 생각만 많이 한다.”

● 신치용 단장

▲생년월일=1955년 8월 26일
▲출신교=성지공고∼성균관대
▲지도자 경력=한국전력 코치(1980∼1995년)∼삼성화재 감독(1995∼2015년)
▲수상 경력=V리그 남자부 감독상 8회(2005, 2008∼2014년),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남자배구 동메달
▲기타 경력=대한배구협회 이사(2003∼2008년), 삼성화재 단장 겸 제일기획 운영담당 부사장(2015년∼현재)

최현길 스포츠 2부 부장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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