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3인 리시브 시스템’에 걸린 운명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10월 11일 05시 30분


대한항공은 매 시즌 우승후보로 평가받았지만, 2010~2011시즌 정규리그 우승 이외에 1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올 시즌에는 새로 부임한 박기원 감독이 추구하는 파워풀한 공격배구를 앞세워 숙원을 풀 수 있을까. 스포츠동아 DB
대한항공은 매 시즌 우승후보로 평가받았지만, 2010~2011시즌 정규리그 우승 이외에 1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올 시즌에는 새로 부임한 박기원 감독이 추구하는 파워풀한 공격배구를 앞세워 숙원을 풀 수 있을까. 스포츠동아 DB
대한항공은 매 시즌 강팀으로 평가받았다. 토종 선수의 구성이 좋은 데다 외국인선수도 파괴력을 갖췄기에 이 같은 평가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2010~2011시즌 V리그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 외에 ‘1위’와는 거리가 멀다. 챔피언결정전 우승 경험도 없다. 2014~2015, 2015~2016시즌에는 정규리그 4위에 그치며 자존심을 구겼다. 그러다 보니 경기 외적인 문제들까지 불거져 곤욕을 치렀다. 올 시즌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 이유다.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지낸 박기원 감독을 영입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전력에 큰 변화는 없다. 베테랑 리베로 최부식(코치 부임)이 은퇴한 것이 사실상 유일한 전력누수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은 곽승석과 재계약에 성공했고,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1순위로 미챠 가스파리니를 데려왔다. 전문가들이 대한항공을 우승후보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 3인 리시브 시스템에 걸린 운명

박 감독이 공개한 올 시즌 대한항공의 ‘게임플랜’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3인 리시브 시스템’이다. 기존의 정지석을 비롯해 김학민, 신영수 등 3명의 레프트가 리시브를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리시브의 범위가 넓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네트를 살짝 넘어가는 짧은 서브를 센터들이 리시브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연장선상이라 보는 것이 맞다. 박 감독은 “대한항공에 딱 맞는 배구를 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리시브 방법도 기존의 언더핸드가 아닌 오버핸드(어깨 높이에서 토스하듯 리시브하는 방법)로 바꿨다. 현대 배구에서 목적타로 불리는 플로터 서브가 늘어난 데 따른 대비책이다. 공 끝의 변화가 심한 플로터 서브를 받기 위해선 컨트롤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박 감독은 언더핸드로는 플로터 서브를 받기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일본여자배구대표를 지낸 오야마 카나가 8월4일 일본 스포나비에 게재한 칼럼에서 “플로터 서브는 공의 변화가 심하다. 리시버가 이를 컨트롤하지 않고 손에 대기만 하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공이 튄다. 리시브에 가담하는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 좋은 예다. 강력한 스파이크서브는 기존의 방법을 고수해야 하지만, 플로터 서브는 다르다.

최근 국제배구연맹(FIVB)의 ‘오버핸드 핑거 액션’ 규정이 개정된 것도 박 감독의 ‘3인 리시브 시스템’에 힘을 실어준다. 오버핸드 리시브는 ‘오버핸드 핑거 액션’에 속한다. FIVB는 2014년 경 ‘첫 번째 공’에 대한 오버핸드 핑거 액션을 더블 콘택트 반칙으로 규정했다. 상대 서브, 상대 블로킹에 맞고 자기 진영으로 넘어온 공, 자기 코트로 넘어온 상대 공격 등이 ‘첫 번째 공’이다. 즉 오버핸드 서브리시브도 더블콘택트 또는 캐치볼 반칙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 이 규정이 완화되면서 오버핸드 리시브를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어졌다. 한 배구인은 “박 감독이 세계 배구의 흐름에 맞는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했다.

박 감독은 “화려한 배구가 아닌 팀에 도움이 되는 배구를 하기 위한 선택이다. 공격형 배구를 위해선 어느 정도의 범실도 계산해야 한다. 플로터 서브는 기존의 방법으로 리시브하기에 한계가 있다. 연속 득점이 가능한 플로터 서브를 효과적으로 받고 공격수에게 빠르게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 점보스. 스포츠동아DB
대한항공 점보스. 스포츠동아DB

● 화려한 선수층은 그대로, 관건은 리베로

대한항공의 토종 선수층은 두껍다. 주전과 백업의 격차도 크지 않다. 신영수~김학민~정지석~곽승석~심홍석까지 쓸만한 레프트 자원만 5명이다. 이들 중 정지석은 2015~2016시즌 V리그 수비 부문에서 압도적인 1위(세트당 6.892)였다. 공격력도 수준급이다. 지난 시즌 시간차 3위(성공률 68.18%), 퀵오픈 4위(성공률 59.60%)에 올랐다. 중앙 후위공격도 가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어 매력적인 자원이다. 김학민과 신영석은 라이트 가스파리니의 자리에 들어갈 수도 있다. 최석기~김철홍~김형우~진상헌의 센터진도 탄탄하다. 넷 모두 속공과 블로킹에서 자기 몫은 해줄 선수다. 한선수는 여전히 리그 최정상급 세터다. 박 감독은 “한선수는 밖에서 얘기하는 것과 다르다. 정말 열심히 한다. 자기 몫은 충분히 해주는 선수라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음을 보였다. 황승빈도 유사시에 투입해 쓰기엔 무리가 없을 정도로 기량이 올라왔다는 평가.

문제는 리베로다. 베테랑 김주완에 이어 정신적 지주였던 최부식이 은퇴 후 코치로 부임했다. 완전히 새판을 짜야 한다. 올 시즌에는 백광현과 김동혁이 번갈아 나선다. 주전 리베로가 유력한 백광현은 2015~2016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4번)에서 지명된 기대주. 2번째 시즌에 팀의 수비라인을 이끌어야하는 중책을 맡았다. 2015~2016시즌에는 28경기에 출장해 세트당 2.20 리시브, 1.678 디그를 기록했다. 3일 끝난 KOVO컵 4경기에선 세트당 3.308리시브, 2.769디그의 성적을 거두며 한층 발전한 기량을 선보였다.

박 감독의 색깔인 스피드 배구를 팀에 녹이기 위해선 리베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오버핸드 핑거 액션’이 요구되는 포지션이다. 기본 덕목인 수비는 물론 원활한 공격을 위해 이단연결 능력도 향상해야 한다. 브라질 국가대표 세르지오 산토스(41)가 좋은 예다. 한 배구인은 “세르지오의 토스워크가 한국의 웬만한 세터들보다 낫다”고 했을 정도. 세계 배구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는 박 감독 체제에서 리베로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질 수 있다. 박 감독은 “백광현과 김동혁 둘 다 언제든 뛸 수 있게 준비시킬 것이다”이라고 했다.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 스포츠동아DB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 스포츠동아DB

● 박기원 감독 출사표 “파워풀한 공격배구”

박 감독은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개혁해야 한다”는 말로 변화를 예고했다. 3인 리시브 시스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강점인 공격력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다. “파워풀한 공격배구를 보여주겠다”는 것이 박 감독의 출사표. 공격배구의 반대급부는 많은 범실이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우리카드와 함께 2015~2016시즌 가장 많은 공격범실(290개)을 저질렀다. 511개의 서브범실도 리그에서 2번째로 많은 수치. 고비마다 나온 서브범실이 발목을 잡았다. 서브 시 토스하는 손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바꾼 것도 ‘단점 개혁’의 일환이다. “많은 것을 바꾸느라 선수들의 적응속도가 더디지만, 꾸준한 연습을 통해 잘 만들어보겠다.” 박 감독의 다짐이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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