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원의 ‘송창식 배려’, “내가 못 쳐서 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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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4월 16일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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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오재원. 스포츠동아DB
두산 오재원. 스포츠동아DB
영혼까지 털리고 있는 투수를 계속 두들겨야 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태연한 척했지만 두산도 곤혹스런 시간이었다.

14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 1회 2사 후 마운드에 오른 한화 송창식은 5회를 마치고 교체될 때까지 90구를 던지며 12실점(10자책점)을 했다. 홈런을 무려 4방이나 맞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럼에도 한화 벤치는 송창식을 바꾸지 않았다. 전의를 상실한 송창식은 5회 시작하자마자 정수빈에게 안타 후 민병헌에게 홈런을 맞았다. 이미 점수는 2-16이 됐다.

그나마 홈런 이후 두산 4~6번 타자인 닉 에반스~양의지~오재원을 모두 범타처리하고 가까스로 이닝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타자인 오재원은 루킹 삼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오재원이 스윙조차 없이 삼진을 당했다는 점이다.

상황에 대입시켜보면 오재원이 스윙을 못한 것인지, 일부러 안한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15일 삼성전에 앞서 만난 오재원은 이에 대해 “칠 수 없는 공이었다”라고 말했다. 서서 삼진을 당할 만큼 컨트롤이 절묘한 공이 들어왔다는 얘기였다.

두산 박철우 타격코치도 “타자들의 개인 성적이 달려있는데 칠 때 많이 쳐둬야 하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오재원도, 박 코치도 공식 코멘트는 “투수가 너무 잘 던져서 못 쳤다”였다.

그러나 두산의 핵심 인사는 “그럼 어떻게 타자가 ‘안 쳤다’는 말을 할 수 있겠나? (오재원의 삼진은) 흐름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보는 눈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두산 타자들은 마운드에서 고독하고, 처참하게 무너져가는 송창식을 어느 시점부터 쓰러뜨려야 할 적이 아니라 동업자로 본 것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타당하다. 오재원의 “내가 못 쳤다”는 말속에는 끝까지 송창식을 예우하려는 배려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한화 벤치조차도 하지 않았던 투수 보호를 두산 타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해준 것이다. 승부의 세계가 아무리 처절해도 인간미가 배어 있어야 감동을 줄 수 있다. 두산이 진짜 승자인 이유는 17득점이 아니라 오재원의 삼진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잠실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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