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리그의 품격은 구성원 스스로가 높여야 한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3월 1일 05시 45분


현대캐피탈은 25일 안산 원정에서 OK저축은행을 누르고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원정이라 통천만 내려진 가운데 조촐하게 우승 세리머니가 펼쳐져 아쉬움을 샀다. 스포츠동아DB
현대캐피탈은 25일 안산 원정에서 OK저축은행을 누르고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원정이라 통천만 내려진 가운데 조촐하게 우승 세리머니가 펼쳐져 아쉬움을 샀다. 스포츠동아DB
드디어 대장정의 끝이 보인다. 현대캐피탈이 25일 안산 원정에서 ‘NH농협 2015~2016 V리그’ 남자부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다. 7년만의 경사다. 여자부에서도 IBK기업은행이 27일 화성에서 3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이날을 위해 많은 것을 참고 견디면서 땀을 흘려온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에 축하의 말을 전한다. 두 팀 모두 음지에서 현장을 지원해온 프런트의 도움과 열정이 없었더라면 우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프런트의 숨은 헌신에도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 안산에서 우승 축포가 터지지 않은 이유는?

25일 현대캐피탈이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 상록수체육관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우승을 기념하는 대형 통천이 상공에서 내려왔는데, 이를 장식해줄 축포와 꽃가루가 날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승의 감격이나 가치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아쉬웠다. 잔치의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사라진 것 같았다.

이유가 있었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현대캐피탈, OK저축은행과 한국배구연맹(KOVO)은 얼굴을 붉혀야 했다. 우승 세리머니를 놓고 의견이 달랐다. 비록 원정구장이지만, 시즌의 마무리를 하는 순간이라 좀더 화려하고 관중과 시청자의 뇌리에 오래 남을 행사를 원했던 KOVO, 현대캐피탈과 OK저축은행의 뜻이 달랐다.

OK저축은행은 “관례대로 했다”는 입장이다. 2년 전 원정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했던 당시의 영상을 참조해 그대로 협조해줬다는 것이다. 현대캐피탈은 우승 기념 통천이 내려와야 하는 자리에 이미 내걸린 OK저축은행의 대형 현수막 때문에 기분이 상했지만 참았다. 통천의 위치는 한 발 양보했다. 그 대신 통천이 내려올 때 특수효과를 사용할 테니 협조해주기를 바랐다. KOVO의 규정은 두루뭉술했다. “홈팀이 세리머니에 협조한다”는 문구만 있었다. 이 세리머니를 어떤 범위로 할 것이냐를 놓고 각자의 입장이 달랐다.

현대캐피탈은 이 실랑이에서 마음이 상했다. 특수효과 사용을 포기했다. 몇 년 전까지 원정팀의 이벤트에 가장 비협조적이었던 과거가 있기에 순순히 물러섰다.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다. 그러나 당시 그 같은 결정을 내렸던 사람은 이미 팀을 떠났다. 따지고 보면 이런 일은 어느 팀에나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각 구단이 과거의 일은 모두 덮고 미래를 위해 서로 잘해보자고 마음을 모으던 차에 또 이런 일이 벌어졌다.

● 우승 이후 프런트가 다 바뀐 OK저축은행에 들리는 경고음

OK저축은행은 지난 시즌 창단 2년 만에 우승했다. V리그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그러나 우승 이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단장과 사무국장, 홍보팀장 등 프런트 대부분이 팀을 떠났다. 프로스포츠산업을 이해하려고 했던 전문가 출신의 프런트는 소위 말하는 ‘이 바닥의 룰’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신생팀이지만 문제점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최근에는 여기저기서 경고 신호가 켜지고 있다.

25일 우승 세리머니를 둘러싼 신경전도 그 바탕에서 나왔다. OK저축은행 관계자는 경기 후 원정응원석에서 관중이 꽃가루를 뿌리자 KOVO에 어필했다. “규정에 어긋나니 제재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규정대로 하자면 홈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책임은 홈팀이 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규정은 OK저축은행이 먼저 어겼다. 이날 오전 코트적응훈련을 하려던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황당한 상황을 경험했다. OK저축은행의 모기업에서 주관하는 행사 준비 때문에 코트가 엉망이었다. 몇 달 전 결정된 중요한 행사라서 어쩔 수 없다고 했지만, V리그 일정도 지난해 10월 시즌 개막 전에 정해진 중요한 일정이다. 리그의 구성원이 된 이상 모기업의 행사보다는 리그의 일정이 우선해야 한다. 그것이 프로스포츠와 V리그의 룰이다.

OK저축은행은 최근 홈 경기장에 명품 광고를 유치하려고 노력했다. 그 브랜드를 이용해 팀과 모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중요한 일이지만, 이런 노력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 자기 팀의 문화와 생각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V리그에 참가 하려던 당시의 절박함이 벌써 사라진 것 같다.” “일찍 우승해서 그런지 창단 때의 초심이 없어졌다.” 이런 말들이 V리그 구성원들의 입에서 나온다면 어떤 명품을 유치해도 이미지 상승효과는 없다.

● 리그의 품격은 서로의 존중에서 시작된다!

V리그는 그동안 상대 존중이라는 면에서 아쉬운 일들을 많이 했다. V리그 원년 챔피언 결정전 때 판정에 대한 과격한 항의와 난동이 있었고, 이후에도 셀 수도 없는 사례가 나왔다. 몇 해 전에는 챔피언이 결정되던 날 심판실로 구단 관계자가 쳐들어갔다. 징계 대상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은 채 돌아서서 혀만 찼다. 그러다보니 규정은 더 지켜지지 않았다. 비정상이 일상화되면서 편법과 거래가 판을 치는 상황도 나왔다.

출범 10년을 이미 넘어선 V리그다. 이제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킬 때다. 시청률이나 경기의 승패보다 더 중요하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 리그의 품격을 올리는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 가능하다. 우선 먼저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를 존중해야 리그의 가치가 올라간다. 지난 시즌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행동은 앞으로 프로야구의 품격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V리그의 라이벌 KBL도 이미 정규리그 마지막 날 상대 존중에 동참했다. 패배가 쓰라리고 속은 상하겠지만, 상대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박수를 보내는 행동은 리그를 바라보는 팬들에게 상상 이상의 영향을 준다.

비록 우승은 놓쳐도 명예는 얻을 수 있다.

코트에 있는 모든 배구인과 프런트가 먼저 서로를 존중해주지 않으면 그 리그는 팬과 관중, 시청자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 그동안 배구는 몸싸움이 없는 ‘신사의 스포츠’라는 것을 강조해왔다. 말로만 신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행동으로 신사의 품격을 보여야 한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