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애진 기자의 주球장창]‘여자 KBO리거’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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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사직구장 시구 12세 박민성양
프로선수 꿈꾸며 리틀야구서 운동
“금녀의 벽, 언젠간 무너지겠죠?”

롯데 제공
롯데 제공
지난해 8월 한 소녀가 미국을 들썩거리게 했습니다.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68년 역사상 처음으로 소녀 승리투수가 탄생했기 때문이죠. 필라델피아연합팀의 모네 데이비스(14)는 내슈빌을 상대로 6이닝 동안 8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완봉승(4-0)을 거뒀습니다. 그는 또래의 소년들도 쉽지 않은 최고 시속 112km의 빠른 공을 던졌습니다. LA 다저스 공동구단주 매직 존슨은 “누가 여자는 야구를 못한다고 했는가”라며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죠.

한국에도 데이비스 같은 소녀들이 있습니다. 1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시구를 한 박민성 양(12·부산 대연초 6·사진)도 그중 한 사람이죠. 무작정 야구가 좋다는 박 양은 롯데의 열렬한 팬입니다. 롯데 선수들을 만난 것도, 많은 관중 앞에서 공을 던져본 것도 그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 됐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야구를 하는 박 양을 보며 그의 부모는 걱정이 앞섰다고 합니다. 야구는 ‘남자들의 운동’이라는 편견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딸의 꿈을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방법이 문제였죠. 중학교 진학 후 박 양을 받아줄 야구팀이 있을지 불투명했습니다. 고민 끝에 박 양은 지난해 부산남구리틀야구단에 입단했습니다.

한국리틀야구연맹(한국연맹)에는 현재 157개의 리틀야구팀이 있습니다. 2000여 명의 등록 선수 중 박 양 같은 소녀는 5명입니다. 세계 리틀리그는 9∼12세로 연령을 제한하지만 한국연맹은 여성 선수에 한해 14세까지 뛸 수 있도록 로컬룰을 만들었습니다. 소녀들이 중학교 진학 후 야구팀에 가입하기 어려운 환경을 고려한 것이죠. 야구소녀들에겐 고교 진학 후 사회인야구팀에서 계속 야구를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한국 최초의 여고생 야구선수 안향미(34)처럼 고교 야구팀에 활동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향미는 1999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서 덕수정보산업고(현 덕수고)의 선발 투수로 등판해 공식 대회에 출전한 첫 여성 야구선수가 됐습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과 프로팀 진출이 좌절된 뒤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해외 독립리그 진출이 불가능한 대부분의 국내 여성 선수들은 사회인야구단에서 활동하며 국가대표 선발을 목표로 뜁니다.

박 양의 꿈은 롯데의 손아섭(27) 같은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박 양은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야구가 재미있고 좋기 때문이죠. 현재 한국 프로야구 규정에 성별 제한은 없습니다. 해외 리그에서 뛰던 몇몇 여자선수가 프로 지명 신청을 한 적은 있지만 실제 지명을 받은 선수는 없습니다.

“그냥 열심히 하다 보면 잘되지 않을까요”라고 박 양은 말합니다. 박 양은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분명한 건 벽은 언젠가 무너진다는 역사적 진실입니다. 68년 전 4월 15일 재키 로빈슨(1919∼1972)이 데뷔하며 메이저리그에서 인종차별의 벽을 무너뜨린 것처럼 말이죠.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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