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시몬… ‘레오 천하’ 끝장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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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대표 주전센터… 세계 최정상급 기량
어린 동료들 다독이며 무릎 부상에도 투혼

“어떻게 저런 선수를 데려왔는지 모르겠다. 이름값으로 보면 역대 외국인 선수 가운데 단연 최고다.”

10년 넘게 국제배구연맹(FIVB) 심판으로 활동한 김건태 한국배구연맹(KOVO) 심판위원장은 올 시즌 전 OK저축은행이 시몬(사진)을 영입했다고 발표했을 때 깜짝 놀랐다. 쿠바 대표팀의 주포로 활약했던 시몬의 활약상을 수년간 직접 눈으로 봐 왔기 때문이다. 시몬은 블로킹과 속공, 서브 등 기량 면에서 세계 최정상급 선수였다.

그런데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이 시몬을 뽑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실력이 아닌 인성이었다. 김 감독은 새 외국인 선수로 시몬을 낙점하기 전 직접 그가 뛰고 있던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김 감독은 “어떤 선수인지 살피려 와인을 마시며 면접을 했다. 그런데 직접 물도 가져오고, 스스로 호텔 체크인도 하더라. 주위를 배려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 김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시몬은 실력으로도, 인성으로도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였다.

시몬은 정규시즌에서 속공 1위(71.90%), 서브 1위(세트당 0.568개), 블로킹 2위(세트당 0.742개)를 기록하며 팀의 정규시즌 2위를 이끌었다. 한국전력과의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도 77득점을 기록하며 2연승의 주역이 됐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유일한 변수는 그의 무릎이었다. 이탈리아 리그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무릎이 5개월간의 정규시즌을 치르며 악화된 것. 코트 주변에서는 “시몬의 부상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시몬은 진통주사도 거부한 채 경기에 나섰다. 통증 없이 뛰다 보면 부상이 더 심해질 수 있어 통증을 안고 뛰기로 한 것이다. 자기 한 몸 챙기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그는 경험이 적은 어린 동료들을 다독이는 역할까지 맡았다. 세터 이민규는 “경험 많은 시몬이 잘 이끌어줘 우리는 그저 묵묵히 따라갔을 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지난해까지 한국 남자 배구판은 삼성화재의 외국인 선수 레오 천하였다. 레오는 지난 두 시즌 팀 우승을 이끌며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를 싹쓸이했다. 하지만 시몬 앞에서 레오는 그저 한 명의 평범한 외국인 선수일 뿐이었다. 레오는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도 여러 차례 시몬의 블로킹 벽에 걸린 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에 비해 센터로 나선 시몬은 속공과 블로킹은 물론이고 후위 공격까지 적극 가담하며 종횡무진 코트를 누볐다.

김 감독은 “시몬은 기량뿐만 아니라 인성까지 갖춘 대선수다. 내가 바랐던 시몬 효과를 톡톡히 봤다. 시몬을 잘 데려와 기적을 일궜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시몬#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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