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군단도 쩔쩔매게 한 ‘알제리의 야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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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Cup Brasil 2014]
GK 엠볼히, 독일전 눈부신 선방쇼… 연장서 두 골 내주며 아깝게 패해

1일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의 베이라히우 스타디움에서 열린 독일과 알제리의 브라질 월드컵 16강전.

이번에도 팬들을 사로잡은 선수는 골을 터뜨린 공격수가 아니었다. 우승 후보로 꼽히던 독일의 골잡이들을 고개 숙이게 만든 알제리의 골키퍼 라이스 엠볼히(28·CSKA)였다. 토마스 뮐러 등 독일의 간판 공격수들이 날린 29개의 슈팅 중 22개가 골문 쪽으로 향했지만 좀처럼 골네트는 흔들리지 않았다. 연장전까지 가는 120분간의 혈투 속에 결국 두 골을 내줬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결승골을 터뜨린 독일의 메주트 외질 대신 엠볼히를 경기 최우수선수(MOM)로 선정했다. 엠볼히는 이날 22개의 독일 유효슈팅 중 11개를 세이브하며 골문을 지켰다. 독일이 공격점유율 78%로 경기를 압도하면서도 연장전까지 끌려간 이유다.

엠볼히를 앞세운 알제리는 이날 패하기는 했지만 독일을 상대로 눈부신 역습전술을 펼치면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독일은 연장 전반 2분 안드레 쉬를레와 연장 후반 15분 외질이 골을 넣었지만 연장 종료 직전 알제리의 압델무멘 자부에게 추격골을 허용했다. 알제리를 꺾은 독일은 8강에서 프랑스와 ‘빅매치’를 벌이게 됐다.

엠볼히의 독특한 축구 인생도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콩고 국적의 아버지와 알제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엠볼히는 프랑스에서 살면서 프랑스 18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에서 활약했다. 스코틀랜드에서 프로에 데뷔한 엠볼히는 그리스 불가리아 러시아 등 유럽 무대를 두루 거치면서 각국 선수 슈팅에 대한 적응력을 쌓아왔다. 2008년에는 필리프 트루시에 전 일본 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고 일본 실업축구리그(JFL) FC 류큐에서 활약해 H조에서 만난 한국 선수들도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프랑스와 콩고도 아닌 알제리 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됐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알제리 대표팀에 선발됐고 뛰어난 반사신경과 안정된 경기운영 능력을 인정받아 조별리그 2차전부터 주전 골키퍼를 밀어냈다. 이후 엠볼히는 4년간 ‘철벽’을 과시하며 알제리의 골문을 지켰고 사상 첫 월드컵 16강행을 주도했다.

스포츠는 결과가 스타를 만든다. 그래서 축구에서는 언제나 골을 넣은 선수들이 갈채를 받아 왔다. 하지만 이번 대회 16강전에서는 골키퍼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네덜란드전에서 신들린 방어를 선보였던 멕시코의 기예르모 오초아(29·AC 아작시오), 그리스를 꺾고 사상 처음 월드컵 8강에 오른 코스타리카의 기적도 골키퍼 케일러 나바스(28·레반테 UD)의 선방 덕분이다. 그리고 이번엔 엠볼히가 등장했다. 키커가 아닌 골키퍼들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돋보인 월드컵이 되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알제리#라이스엠볼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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