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수첩]류현진 경기 못 보는 LA 한인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3월 29일 0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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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 류현진. 동아닷컴DB
LA 다저스 류현진. 동아닷컴DB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27)이 2014년 시즌 첫 등판을 한 지난 22일(미 서부시간), LA 한인 타운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호주 시드니에서 치른 LA 다저스의 개막 2차전 TV중계를 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한인 야구팬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LA 지역 주민 70%가 다저스 경기를 볼 수 없다’던 보도에 ‘설마’했는데 현실이 된 것이다.

25년 동안 83억5000만 달러(약 8조9000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다저스 TV중계권을 독점한 타임워너는 아직 다른 TV 방송 사업자와 재판매 협상을 체결하지 못했다. 타임워너 케이블 가입자를 제외하고 이 같은 내막을 자세히 모르는 나머지 시청자들은 류현진이 등판하는 다저스의 2차전 개막시간인 오후 7시를 전후해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경기 중계 채널을 찾지 못했다.

대형 스크린을 설치한 식당과 술집 등 ‘류현진 특수’를 노렸던 업소들은 아예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일부 업소는 류현진의 성적에 따라 술이나 안주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하겠다고 광고까지 냈지만 정작 다저스 경기를 중계하는 채널을 찾지 못해 항의하는 손님들에게 해명하느라 낭패를 봤다. 한 업소에서는 궁여지책으로 불법 스트리밍서비스 사이트를 인터넷으로 찾아내 TV모니터와 연결하는 방법으로 간신히 중계방송 화면을 띄울 수 있었다.

다저스 경기를 시청하지 못한 사람들은 부랴부랴 뒤늦게 ‘울며 겨자 먹기’로 타임워너 케이블 가입신청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위성TV 등 다른 TV 방송 사업자와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시청자들은 적지 않은 위약금을 지불해야만 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타임워너가 올 시즌부터 시작한 다저스 경기 한국어 TV중계 서비스도 현실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아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이른바 SAP(Secondary Audio Programming)라는 이중언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다저스 중계에 스페인어나 한국어를 선택하면 해당 언어로 중계방송을 볼 수 있다.

이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LA 지역 언론사들이 치열하게 물밑 경합을 벌여 라디오코리아가 선정됐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아는 한인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디오코리아조차 그 같은 서비스를 알리지 않고 있다. 라디오코리아 홈페이지에는 다저스 경기의 라디오 중계 스케줄만 나와 있을 뿐 타임워너 다저스 TV중계를 한국어로 서비스한다는 내용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타임워너 가입자는 한국어 TV중계를 시청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감추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텔레비전을 통해 한국어로 다저스 중계를 보는 시청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라디오 청취율이 떨어져 광고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장삿속이 앞섰기 때문이다. 정규시즌 162경기 중 라디오코리아가 중계하는 것은 60~70경기 정도 된다. 이 경기들은 라디오코리아 중계 내용을 그대로 타임워너 케이블의 TV중계와 동시방송한다고 한다.

하지만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기술상의 문제로 보통 2~3초 정도 딜레이가 생긴다. 화면에서는 타자가 스트라이크아웃을 당하고 있는 데 음성은 “와인드업, 5구째 던졌습니다”라고 나오게 된다.

텔레비전 화면에 라디오 오디오를 그대로 덮어 나가는 것은 따라서 사실상 TV중계의 시청효과를 보지 못한다. 이래저래 류현진이 던지는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고 싶으면 직접 다저스타디움에 가든지, 아니면 오직 타임워너 케이블에 무조건 가입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스포츠 중계방송 및 스포츠 경기의 소비자로서 한인을 비롯한 야구팬들의 선택권이 극도로 제한돼 있어 반독점 금지법 적용여부까지 검토할 만하다. 프로야구 경기가 어느 틈엔가 방송중계권 장사 논리에 묻혀가고 있는 현실은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물론 어쩌면 연방 대통령까지 분통을 터뜨릴지도 모를 심각한 문제다. 야구는 미국의 ‘국민 스포츠(National Pastime)’이기 때문이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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