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바보… 가족 바보… ‘우승 대들보’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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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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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화재 정규리그 제패 이끈 쿠바출신 특급 용병

프로배구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레오는 경기가 없는 날 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왼쪽부터 레오의 어머니 이네스 마르티네스, 레오, 아들 이안, 아내 스테파니. 삼성화재 제공
프로배구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레오는 경기가 없는 날 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왼쪽부터 레오의 어머니 이네스 마르티네스, 레오, 아들 이안, 아내 스테파니. 삼성화재 제공
삼성화재 레오. 동아일보DB
삼성화재 레오. 동아일보DB
프로배구 삼성화재의 외국인 선수 레오(본명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23)는 팀에서 ‘가족 바보’로 불린다. 훈련이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용인 훈련장 바로 뒤에 있는 집으로 달려간다. 팀에서 마련해준 집에는 아내 스테파니와 아들 이안 그리고 어머니 이네스 마르티네스가 레오를 기다리고 있다.

가족은 레오가 코트에 설 수 있게 만드는 존재다. 그는 올 시즌 공격종합, 오픈공격, 퀵오픈, 후위공격 등에서 1위를 기록하며 삼성화재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의 고향은 쿠바다. 8세에 배구를 시작해 15세 때부터 청소년대표팀과 성인대표팀을 오갔다. 쿠바에서 손꼽히는 선수였지만 생활은 넉넉지 않았다. 배구대표팀 선수로 그는 한 달에 10달러(약 1만1000원)의 월급을 받았다. 지금은 폐지됐지만 당시 쿠바는 식량을 배급했다. 배급된 식량 외에 피자 하나 먹고 싶어도 월급의 10분의 1을 써야 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도 월급은 30달러에 불과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그는 “가족들에게 배불리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먹여주고 싶었다. 쿠바에서는 해결책이 없었다”고 말했다.

2009년 그는 생애 최대의 결심을 했다. 망명이었다. 쿠바에서는 야구, 배구 등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생활고로 망명을 한다. 망명을 하면 8년 동안 쿠바에 돌아갈 수 없다. 8년이 지나면 쿠바로 돌아갈 수 있지만 다시는 외국으로 나갈 수 없다. 그의 결심에 가족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놀라긴 했지만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 아들의 의견을 존중했다”고 회상했다. 영화에서 보듯 카리브 해를 헤엄쳐 건너거나 배에 숨어서 밀항하지는 않았다. 망명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는 간단했다. 그는 “대표팀이 미국령인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했을 때 주위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영사관에 가서 망명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쿠바 망명 선수는 2년간 선수 자격이 정지된다. 선수로 뛰지 못하는 그는 대학에서 배구를 가르쳤다. 숙소도 대학에서 마련해준 곳에서 지내고 용돈을 받아 생활했다. 2011년 푸에르토리코 프로배구 선수로 등록했고, 뛰어난 활약을 펼쳐 러시아 파켈로 이적했다. 하지만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팀의 외국인 선수 정원이 꽉 찬 상태로 코트에서 뛰지 못하게 된 것. 2년을 쉬었던 그에게 또 한 번의 휴식은 은퇴를 의미했다.

이때 에이전트를 통해 한국에서 뛰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당시 한국이 어떤 나라였는지 잘 알지 못했다. 프로배구팀이 있다는 것 정도였다. 낯선 나라였지만 꿈을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테스트에서 그는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다. 한국에 올 당시 그의 짐은 옷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그만큼 절박했다.

그는 최근 쿠바의 해외여행 자유화로 3년간 만나지 못했던 어머니와 한국에서 재회했다. 3년 만에 어머니를 품에 안은 그는 “3년간 전화 통화로만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드디어 내가 뛰는 모습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어머니도 “레오를 3년 만에 봐서 많이 변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대로다”며 웃었다.

은퇴 뒤 자신의 이름을 딴 배구선수육성센터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미래’라는 단어에 대해 말끝을 흐렸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해외에서 살아야만 하는 운명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다. “그래도 제가 코트에서 뛸 수 있으니 가족들이 배불리 먹고 따뜻한 곳에서 지낼 수 있잖아요.”

용인=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삼성화재#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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