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볼 피플] 임영희 “제2 전성기 비결은 아줌마 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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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2일 07시 00분


우리은행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임영희는 경기장 안팎에서 많은 역할을 하며 팀이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정규리그 1위로 도약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우리은행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임영희는 경기장 안팎에서 많은 역할을 하며 팀이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정규리그 1위로 도약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결혼·출산 다 겪은 전주원코치가 멘토
일본 전훈때부터 팀 분위기 확 달라져
승부근성 주입 성공 선두질주 원동력


온화한 미소, 선한 눈빛, 조곤조곤 얌전한 말투. 인생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이 선수에게서 들뜬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의 주장 임영희(33)는 그렇게 ‘절제의 미덕’을 안다. 한 시즌에 6승을 올리던 팀이 1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 매직넘버를 헤아리게 됐는데도, 쉽게 흥분하지 않는다. 임영희는 “솔직히 우리도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 기분이 정말 좋은데, 실감은 안 나고 낯설기도 하다”며 “선수들이 처음부터 ‘1위를 꼭 유지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부담스럽고 불안했을 텐데, 오히려 1위 자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지금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달라진 눈빛과 일본 전지훈련의 교훈

올 시즌 우리은행은 환골탈태했다. 임영희는 “주위에서 ‘눈빛이 달라졌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하신다”고 귀띔했다. 위성우 감독이 새로 부임하자마자 가장 강조한 부분이기도 하다. 위 감독은 “패배의식에 젖어서 지는 것의 심각성을 모르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연습게임이라도 무조건 이겨야 진짜 경기에서도 이길 수 있다”며 수차례 승부욕을 주입시켰단다. 그 변화의 조짐이 시즌 전 일본 전지훈련에서 나타났다. 임영희는 말했다. “일본팀들과 연습게임을 하면 심판들이 대부분 일방적으로 상대에 유리하게 휘슬을 불거든요. 그전에는 7∼8경기에서 1승 하면서 ‘심판 때문에 졌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판정이 불리하면 그것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뛰었어요. 결과요? 딱 2번만 졌어요.” 시즌을 앞두고, 선수들끼리 이런 약속도 했다. ‘적어도 몸싸움이나 의지력에서 밀리지는 말자’는 다짐. 그런데 투지에서 앞서자 경기에서도 계속 이겼다. 임영희는 “비시즌 때 고생했던 보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은퇴를 고민하다 만난 기회, 우리은행

한때 은퇴도 고민했다. 야심차게 프로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신세계(하나외환의 전신)에서 벤치를 지키면서 한 살씩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고개를 들었다. “FA(프리에이전트)가 됐을 때, 솔직히 다른 팀에 가겠다는 마음보다는 그만둬도 좋다는 생각으로 시장에 나갔어요. 그런데 우리은행이 저를 불러주더라고요.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새 팀에 적응하는 게 걱정도 됐고, 농구에 대한 확신도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게 저에게 기회였던 거죠.” 지금은 이 팀에서의 모든 기억이 소중하다. 그만큼 애착도 많다. “성적은 안 났어도, 그동안 함께 웃고 울고 힘든 걸 나눴던 생활이 제겐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힘들었을 때 잘 참고 버티니까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어서 참 다행이에요.”

○‘유부녀 선수’로 사는 행복

임영희는 지난해 4월 5년간 열애한 유재선(34) 씨와 결혼했다. 현재 팀에서 유일한 기혼자다. 합숙과 전훈으로 한 달에 한두 번밖에 못 보는 여자친구의 상황을 유 씨는 늘 이해하고 배려했다.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졌다. 임영희는 “솔직히 연애할 때보다 결혼해서가 더 좋은 것 같다. 생활하기도 좋고 마음도 편하다. 또 ‘결혼하고 나서 농구를 더 잘한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결혼을 잘한 것 같다”며 쑥스러워했다. 물론 ‘유부녀 선수’로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에 좋은 멘토가 있다. 우리은행 전주원 코치는 결혼과 출산을 모두 겪으면서도 오랜 시간 한국 최고의 선수로 활약한 ‘산 증인’이다. “결혼 날짜를 잡은 상태에서 전 코치님과 처음 면담을 했어요. ‘결혼하면 아줌마의 힘이 나와서 농구도 더 잘할 테니, 부담 갖지 말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지금도 감독님과 코치님이 집에 한 번이라도 더 다녀올 수 있게 배려를 많이 해주세요.” 행복을 찾았으니, 이제 꿈만 이루면 된다. 신세계 시절 우승을 해봤지만, 직접 경기를 다 뛰면서 일궈낸 우승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임영희는 “이제 나이도 적지 않은데 올해 같은 기회가 왔을 때 꼭 잡고 싶다. 지금까지 해왔듯 마음을 다잡고 우승의 때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매직넘버는 ‘4’다. 임영희의 희망이 이뤄질 ‘그 때’는 얼마 남지 않았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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