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그라운드 불 꺼지면 야구단 라커룸 터는 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7일 03시 00분


인천서 18년째 구단 유니폼 세탁 이천금씨의 프로야구와 함께한 인생

18년째 프로야구 유니폼을 세탁해온 이천금 씨가 15일 인천 서구 가좌동 자신의 세탁소에서 넥센 선수단의 유니폼을 정리하고 있다.
 이 씨는 야구단이 해외 전지훈련을 가는 1월 중순∼3월 초를 제외하곤 일년 내내 야구복 빨래를 한다. 오른쪽에 이 씨가 그동안 
세탁했던 태평양, 현대, SK의 유니폼이 걸려 있다. 인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8년째 프로야구 유니폼을 세탁해온 이천금 씨가 15일 인천 서구 가좌동 자신의 세탁소에서 넥센 선수단의 유니폼을 정리하고 있다. 이 씨는 야구단이 해외 전지훈련을 가는 1월 중순∼3월 초를 제외하곤 일년 내내 야구복 빨래를 한다. 오른쪽에 이 씨가 그동안 세탁했던 태평양, 현대, SK의 유니폼이 걸려 있다. 인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쏴∼”

시원한 샤워 물줄기가 내리쏟아진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땀을 씻어낸다. 그 와중에 한 중년 여성이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러곤 알몸인 선수들 사이를 아무렇지 않은 듯 헤치고 다닌다. 선수들도 태연하게 농담을 던진다. 선수단 외엔 절대 출입금지인 라커룸과 그 안의 샤워실에 유일하게 ‘상시 접근 권한’을 부여받은 이 여자. 프로야구 태평양(현대의 전신) 시절부터 18년째 유니폼 빨래를 도맡아온 이천금 씨(55)다.

○ 서른여덟에 처음 만난 프로야구

이천금 씨가 양손에 큼직한 사인볼을 든 채 태평양과 그 후신인 현대 유니폼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이천금 씨가 양손에 큼직한 사인볼을 든 채 태평양과 그 후신인 현대 유니폼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프로야구 선수들은 자기 유니폼을 직접 빨아 입었다. 1995년 초 태평양은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 선수단 빨래를 도맡아 해줄 세탁소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태평양 1군 매니저 최재필 씨(52)는 홈구장이던 인천 도원구장 근처 세탁소를 수소문했다. 하지만 두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최 씨는 “밤늦게 경기가 끝난 뒤 새벽까지 세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업주들이 난색을 표했다”고 회상했다. 최 씨가 세 번째로 찾은 게 이 씨의 세탁소였다. 자녀 넷을 키우고 있던 이 씨는 최 씨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이 씨는 그렇게 나이 서른여덟에 처음으로 프로야구와 연을 맺었다.

유니폼 세탁은 고된 일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야구장으로 가 세탁물을 거둬 오면 어느덧 밤 12시를 훌쩍 넘겼다. 세탁기 4대와 건조기 3대를 가동해도 꼬박 2, 3시간이 걸렸다. 세탁을 마친 뒤 유니폼 상의와 하의, 양말, 속옷을 선수 개개인별로 분류했다. 해진 곳이 있으면 수선까지 했다. 빨래를 마치면 선수단이 출근하기 전에 라커룸으로 가 유니폼을 선수별로 옷장에 넣어두었다. 그러면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팀이 지방 방문경기를 할 때면 오전 2, 3시에야 홈구장에 돌아온 선수단에서 유니폼을 받아왔다.

1996년 태평양이 현대로 바뀌었다. 현대는 2000년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길 때 인천에 새로 들어온 SK 선수단에 이 씨를 소개시켜 줬다.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긴 현대도 계속 이 씨에게 빨래를 맡겼기 때문에 이 씨는 현대와 SK의 빨래를 함께 했다. 시즌 중 많게는 하루에 100벌씩 빨래를 했다. 이 씨가 빨래를 마치면 남편이 현대의 홈인 수원으로, 이 씨가 SK의 홈인 인천으로 빨래 배달을 갔다. 동네 주민의 세탁물은 맡을 엄두를 못 냈다. 이 씨는 “그렇게 프로야구가 내 삶 그 자체가 됐다”고 했다.

○ 새벽부터 유니폼 찾는 감독도

이 씨가 프로야구에 발을 들인 이후 숱한 변화가 일어났다. 크고 작은 일들이 이 씨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현대는 2003년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유명을 달리한 이후 야구단 지원이 줄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구단 사정이 어려워지자 한때 세탁비가 연체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씨는 2007년 현대가 해체될 때까지 인천에서 수원을 왕복하며 빨래를 책임졌다.

감독의 스타일도 이 씨에게 영향을 줬다. 2003∼2006년 SK를 이끌었던 조범현 감독(52)은 선수단 출근 시간이 오후 2시였지만 종종 오전 7시에 출근했다. 그럴 때마다 구단 매니저가 “감독님 출근했으니 빨리 유니폼을 가져오라”고 전화하기 일쑤였다. 반면 2007∼2011년 8월까지 SK를 맡았던 김성근 고양 감독(70)은 너무 늦게 퇴근했다. 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에게 1시간 넘게 특별훈련을 시키는 데다 그 후엔 본인의 개인운동까지 하고 오전 1시쯤 집에 갔다. 이 씨는 감독 유니폼까지 수거해야 집에 갈 수 있었다. 이 씨가 홀로 운동하는 김 감독에게 “집에 안 가시냐”고 하소연하면 “나랑 같이 운동하고 갑시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씨는 “그땐 솔직히 너무 얄미웠다”며 웃었다.

이 씨는 지난해까지 선수들에게 “잠실로 경기하러 갈 땐 꼭 헌 유니폼을 가져가라”고 당부했다. 잠실에서 경기를 한 유니폼을 빨 때는 유독 얼룩이나 때가 잘 안 지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해 말 잠실구장 흙에서 석면이 검출돼 큰 파문이 일어났고 그 이후 잠실구장의 흙을 전면 교체하자 그런 일이 없어졌다. 또 천연잔디보다는 인조잔디에서 때가 더 묻기도 한다. 이 씨는 “인조잔디에서 경기한 선수의 유니폼 엉덩이에는 쥐 발자국처럼 촘촘히 때가 묻어 안 지워진다. 엉덩이 쪽을 따로 손빨래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따뜻한 선수 덕에 버틴 18년


이 씨가 수거해 차에 실어둔 유니폼을 팬들이 훔쳐가기도 했다. 라커룸에서 고가의 물건이 없어질 때면 의심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 씨는 마음 따뜻한 선수들과 함께할 수 있었기에 즐겁다고 했다.

2002년 SK에서 처음 만난 현 LG 김기태 감독(43)도 이 씨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한여름 땀에 전 유니폼은 아무리 빨아도 냄새가 날 때가 있다. 그때 일부 선수는 이 씨에게 불평했다. 그럴 때마다 당시 고참 선수였던 김 감독은 “예전에 집에서 직접 빨아 입을 때를 생각해라”라며 이 씨를 감쌌다.

SK 박진만(36)은 1996년 현대에서 데뷔할 때부터 이 씨에게 세탁물을 맡겼고 2005년 삼성으로 이적하고도 이 씨를 잊지 않았다. 지금도 이 씨와 마주치면 먹을 것과 함께 “힘내시라”는 따뜻한 말을 건네곤 한다.

넥센 조중근(30)이 SK에서 뛰던 2007년 초. 이 씨가 그의 속옷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이 씨는 사과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이 씨를 “이모”라고 부르는 조중근은 웃어넘겼다고. 조중근은 2007년 시즌 중인 5월 현대로 이적한 뒤 수원 라커룸에서 익숙한 속옷을 발견했다. SK와 현대의 빨래를 함께 하던 이 씨가 실수로 그의 속옷을 SK가 아닌 현대로 보냈던 것이다.

○ 대를 이어 함께하고픈 프로야구

이 씨는 프로야구 덕에 네 자녀를 부족함 없이 키웠다. 2004년엔 종전의 허름한 세탁소 대신 인천 서구 가좌동에 넓은 세탁소를 장만했다. 2010년 시즌 뒤 SK 빨래는 그만뒀다. 2000년부터 10년 동안 두 구단의 빨래를 해오다 보니 몸에 무리가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천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넥센의 빨래는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이 씨는 “현대와의 의리 때문”이라고 했다.

이 씨는 “힘에 부치면 아들에게 세탁소를 물려줘서라도 프로야구와의 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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