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피콕 ‘완벽한 질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8일 03시 00분


英 피콕 100m 10초90 金… 5세때 수막염으로 다리 절단
“베컴-피스토리우스 내 영웅”

‘블레이드 러너’로 유명한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6·남아공)마저도 7명의 조연 중 한 명이었다. 주연은 개최국 영국 출신으로 ‘제2의 피스토리우스’로 불리는 조니 피콕(19)이었다.

6일 오후 9시(현지 시간)가 넘은 영국 런던 올림픽스타디움. 경기장을 가득 메운 8만 명의 관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어 장내 아나운서가 2012 런던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남자 육상 100m T44(절단 및 기타 장애) 선수들을 소개했다. 4번 레인 피스토리우스의 이름이 불렸지만 관중의 반응은 다른 선수들에 대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곧이어 6번 레인 피콕의 이름이 나오자 거대한 스타디움이 들썩거렸다. “피콕! 피콕!” 그를 연호하는 8만 관중의 함성이 런던 하늘에 울려 퍼졌다. 단순히 자국 선수라서가 아니었다. 그만큼 기대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출발 총성과 함께 함성은 굉음으로 변했고 피콕이 10초90의 패럴림픽 신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정점을 찍었다. 미국의 리처드 브라운이 11초03으로 그 뒤를 이었고 피스토리우스는 11초17로 4위에 그쳤다. 이 종목 2연패 및 이번 대회 4관왕(100m, 200m, 400m, 400m 계주)을 노렸던 피스토리우스는 200m 은메달에 이어 100m에서는 노메달에 그쳤다.

많은 사람이 피스토리우스의 금메달을 예상했지만 피콕은 이 종목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그는 이미 6월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10초85로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육상 입문 2년 만에 달성한 성과였다. 올 시즌 기록만 보면 피스토리우스는 피콕의 적수가 못 된다. 피스토리우스의 100m 개인 최고 기록은 2007년에 세운 10초91이지만 그는 최근 몇 년간 400m를 중심으로 훈련했고 올 시즌 100m 개인 최고 기록은 이 대회 전까지 11초04였다.

피콕은 다섯 살 때 수막염을 앓아 오른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축구를 좋아했던 그는 의족을 맞추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장애인 스포츠를 알게 됐다. 휠체어 테니스와 사격, 그리고 육상 등을 접했지만 육상이 적성에 가장 잘 맞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육상은 최고의 이벤트다. 원초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순수한 스피드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피콕은 자신의 영웅으로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과 피스토리우스를 꼽았다. 베컴은 장애로 좌절하고 있던 청소년기의 그에게 선물을 주며 격려했다. 베컴을 통해 스포츠가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피콕은 무섭게 훈련했다. 그의 가능성을 발견한 영국육상연맹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100m 우승자 도너번 베일리를 조련한 최고의 육상 감독 댄 패프의 지도를 받게 했다. 애초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의 영광을 기대했지만 피콕은 또 한 명의 우상인 피스토리우스를 넘어서며 2012년 런던에서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장애인 육상의 대명사 피스토리우스가 2004년 아테네 대회 200m에서 우승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것처럼….

런던=이승건 기자 why@donga.com
#패럴림픽#조니 피콕#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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