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운 김상수 배영섭 잘해서 뿌듯”… “공 100개가 한계? 난 200개 넘게 던져”
장효조(1956∼2011)가 2010년 7월 24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현역 시절 못지않은 멋진 스윙으로 시타를 하고 있다. 1980년대 ‘안타제조기’로 불렸던 그는 삼성 스카우트를 맡았을 때 경북고 김상수를 발굴했고 2군 감독 시절에는 배영섭을 조련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9월 7일과 14일 일주일 사이에 두 명의 야구 스타가 세상을 떠났다. ‘타격의 달인’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1956∼2011년)과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1958∼2011). 장 전 감독은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는 타격 천재였다. 최 전 감독은 198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거둔 무쇠팔이었다. 둘은 언제나 야구에 인생을 걸었다. 아마추어 야구를 평정했고 나란히 1983년 프로야구에 데뷔했다. 각각 고향인 삼성과 롯데 유니폼을 입고 화려한 날을 보냈다. 현역 말년에 롯데와 삼성으로 트레이드되는 아픔도 겪었다. 고향 팀의 1군 사령탑을 맡지 못한 점도 닮았다. 두 고인의 1주기를 맞아 생전 인터뷰를 바탕으로 가상 천상 대담으로 꾸몄다.
#여기는 천국 스타디움
▽장효조=없네, 없어.
▽최동원=뭐가요?
▽장=독한 선수 말이야. 천국이라 그런가.
▽최=여기에서 그런 선수를 찾지 마세요. 아래 세상은 여전히 치열하잖아요.
▽장=삼성의 선두 질주 속에 롯데 SK 두산 KIA의 4강 경쟁이 치열하군. 그 와중에 최하위 한화는 김태균이 꿈의 4할에 도전하고 있어 대단해. 다른 타자들은 2% 부족하지만….(장효조는 프로 10년 동안 4번이나 수위타자에 올랐다. 통산 타율 0.331로 2위 양준혁(0.316)에 비해 0.015나 앞섰다. 타격이 만족스럽지 않은 날에는 호텔 방에서 방망이를 휘두른 악바리 정신 덕분이다.)
▽최=그건 그래요. 요즘 투수들은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자책점 3실점 이하)만 하면 만족하는 분위기예요. 또 공 100개가 한계 투구 수라는데 아무리 선발-불펜-마무리가 분업화됐다고 해도 경기를 책임진다는 생각을 가져야죠.(최동원은 1987년 5월 16일 해태(현 KIA)와의 사직경기에서 선동열과 연장 15회 던지며 2-2로 비겼다. 최동원은 209개, 선동열은 232개의 공을 던졌다.)
최동원(1958∼2011)이 2001년 7월 1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올드스타전’에서 백두팀의 선발로 나서 역투하고 있다. 현역 시절 롯데의 에이스로 뛰었던 그는 1990년 삼성에서 은퇴한 뒤 한화 2군 감독을 지냈지만 친정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지 못한 걸 늘 아쉬워했다. 동아일보DB▽장=그래도 김상수 배영섭 등 내가 찍었던 후배들이 잘하고 있어 뿌듯해.(장효조는 2009년 스카우트 시절 경북고 김상수를 영입했다. 2군 감독 때는 배영섭을 조련했다.)
▽최=한화 에이스 류현진은 올해 팀 타선의 지원을 못 받았지만 두둑한 배짱으로 정면승부를 한 덕분에 탈삼진 선두(5일 현재 166개)네요. 2006년 한화 투수코치 때 ‘빅 리그에서도 통할 재목’이라고 생각했죠.(최동원은 1981년 대륙간컵 대회에서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뒤 미국 프로야구 토론토와 서면계약까지 했지만 병역 문제 때문에 좌절됐다.)
▽장=나는 마지막에 친정팀에서 2군 감독을 했는데 동원이는 어때?
▽최=내 고향 롯데에서 지도자를 못한 건 아쉬움이 많죠. 세상에 내 뜻대로 안 되는 것도 있더라고요.(최동원은 한화 2군 감독을 했지만 롯데에선 끝내 지도자 생활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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