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구단 ‘겉으론 인프라, 속은 왕따’

  • Array
  • 입력 2012년 6월 20일 07시 00분


프로야구 9개 구단 사장단으로 구성된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가 19일 서울 도곡동 KBO 대회의실에서 10구단 창단 논의를 위한 임시이사회를 진행하고 있다. 결과는 야구인들, 팬들의 염원과는 한참 동떨어진 창단 유보였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프로야구 9개 구단 사장단으로 구성된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가 19일 서울 도곡동 KBO 대회의실에서 10구단 창단 논의를 위한 임시이사회를 진행하고 있다. 결과는 야구인들, 팬들의 염원과는 한참 동떨어진 창단 유보였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그들은 왜 10구단을 반대했나

표면적 반대 이유 “인프라 부족” 불구
NC=8구단 보험용 간주 특권의식 문제
표결도 못부친 구본능 리더십도 한계


“대다수 기존 구단 오너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8개 구단 체제다.” 제9구단 NC 다이노스의 창단에 깊숙이 관여했던 한 야구인의 말이다. 10구단 창단 여부를 놓고 사실상 ‘무기한 유보’ 결정을 내린 일부 구단들과 일반 야구팬들의 시각차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특히 기존 구단들은 홀수구단 체제의 리그운영이 흥행과 수입 등 모든 면에서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0구단 창단 유보를 밀어 붙였다. 9구단의 내년 1군 진입을 앞둔 시점에서 왜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일부 구단들은 파행적인 홀수, 9구단 체제를 택했을까.



○8구단 체제 원하는 구단들

19일 오전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KBO 임시이사회는 약 1시간 만에 끝났다. 예상보다 회의시간이 짧았기에 10구단 창단 추진이 결정된 듯했지만 결과는 유보였다. 심지어 언제 10구단 창단을 논의할 것인지, 그 시기조차 정하지 못했다.

구본능 KBO 총재는 LG그룹의 오너일가다. 그래서 구단간 합의가 필요한 10구단 창단을 추진할 힘이 더 있어 보였다. 그러나 구 총재는 이날 표결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임기 중 자신의 가장 큰 소임을 포기해버렸다. 한 관계자는 “총재는 이미 이사회 전날 10구단 창단추진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크게 낙담했다”고 밝혔다. 이사회 분위기도 처음부터 어긋났다. A구단 사장은 “KBO가 처음부터 유보로 방향을 잡았다. 향후 10구단 창단을 위한 선수수급을 비롯한 여건성숙방안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전했다. B구단 사장도 “이미 총재는 10구단에 대한 의지를 잃고 이사회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이날 이사회에서 10구단 창단이 유보된 가장 큰 이유로는, 역시 그동안 알려진 대로 일부 구단 오너들의 입김을 꼽을 수 있다. 한 야구인은 “기존 구단 오너들은 굴지의 대그룹이 팀을 운영하는 8개 구단 체제를 가장 바란다. 일부 팀에 불안한 시각, 그리고 ‘격이 맞지 않는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9구단 창단을 팬들은 리그 확장으로 받아들였다면, 일부 구단에선 8개 구단 체제 유지를 위한 보험용으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와중에 최근 NC 김택진 구단주가 모기업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매각해 최대주주 자격을 잃은 것도 일부 구단 오너들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10구단 창단 반대의 근거로 작용했다는 게 KBO와 반대진영 소식에 밝은 한 야구계 인사의 전언이다.

○9구단은 8구단 체제 위한 보험

스포츠동아 확인 결과 10구단 창단을 적극적으로 찬성한 구단은 LG, 넥센, NC까지 고작 3개 구단뿐이었다. LG는 구본능 총재의 본가고, 넥센과 NC는 기존 구단과 전혀 성격이 다르다. 그만큼 재벌그룹이 모체인 터줏대감들의 카르텔은 공고했다. SK도 찬성했지만 주도적 입장은 아니었다.

롯데와 삼성은 분명한 반대 의사를 재확인했다. KIA, 두산, 한화는 ‘짝수체제로 가야 하지만 인프라 확충이 먼저다’는 입장이었다. 사실상 ‘당장은 10구단 창단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대 입장이 분명한 롯데 장병수 대표는 “10구단 체제는 위험하다. 시기상조다. 연간 200억원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프로야구팀을 운영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춰야 한다”며 자립구단 넥센과 신흥 IT기업이 모기업인 NC의 역량을 꾸준히 의심했다.

○10년간 20개 고교팀 창단

각 구단은 10구단 창단을 위한 전반적인 여건 성숙과 인프라 개선을 위해 앞으로 10년간 고등학교 20개 팀, 중학교 30개 팀 창단을 지원하기로 했다. NC의 야구발전기금 등을 활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저변확대의 가장 빠른 지름길은 10구단 창단이 될 수 있다.

NC 이태일 대표는 “이사회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저변확대 역시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양해영 KBO 사무총장은 “지금 ‘월드컵 키드’들의 시대라고 하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보고 야구를 시작한 유망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적기를 놓친 것 같아 안타깝다. 곧 아시안게임과 월드컵이 한 해(2014년)에 열린다. (9구단 체제에 따라) 일정편성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트위터 @rushlkh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