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베이스볼] 용달매직…그의 손을 거치면 방망이가 춤춘다

  • 스포츠동아

잘나가는 보험대리점 사장에서 타격코치가 됐다. 잠시 공백이 있었지만 어느덧 20년째, 직업이 타격코치라고 말할 만하다. 한화 유니폼을 입고 돌아온 김용달 타격코치(오른쪽)가 5월 30일 대전 삼성전에서 앞서 훈련하면서 김태균에게 타격자세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잘나가는 보험대리점 사장에서 타격코치가 됐다. 잠시 공백이 있었지만 어느덧 20년째, 직업이 타격코치라고 말할 만하다. 한화 유니폼을 입고 돌아온 김용달 타격코치(오른쪽)가 5월 30일 대전 삼성전에서 앞서 훈련하면서 김태균에게 타격자세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타격코치 20년…한화 타격코치 김용달

잘나가는 보험대리점 사장에서 타격코치가 됐다. 잠시 공백이 있었지만 어느덧 20년째, 직업이 타격코치라고 말할 만하다. 한화 유니폼을 입고 돌아온 김용달 타격코치(오른쪽)가 5월 30일 대전 삼성전에 앞서 훈련하면서 김태균에게 타격자세를 설명하고 있다.

선수 은퇴 후 보험영업…보험왕도
MBC코치로 첫발…심정수 등 조련
집요·성실…연구하는 코치로 명성
“잘치는 ML타자, 공 궤적 예상해 쳐”
“방망이는 선수 몫…난 자심감 줄뿐”


메이저리그의 타격이론가 찰리 로는 “3할의 예술”이라고 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타격의 신’으로 불리는 가와카미 데쓰하루. 투수가 던진 공의 실밥 사이를 보고 쳤다던 그는 “날아오는 공의 마음을 때리는 것”이라고 했다. 타격.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다. 투수가 전력으로 던지는 공을 쳐야 한다. 타자를 속이려는 투·포수는 물론 7명의 수비수를 상대로 머리까지 써야 한다. 한화 김용달(56) 타격코치. 2010년을 끝으로 야인으로 지내다 5월 12일 팀에 합류했다. 1990년 MBC 타격코치로 시작해 20년째 한 우물만 파고 있다.

○집요한 타격코치, 성실한 타격코치

아는 사람들은 집요하다고 말한다. 본인도 인정한다. “어느 선수가 이것만 조금 수정하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 코치라면 반드시 얘기를 해야 한다. 선수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런 시대가 아니다. 눈높이를 맞춰 계속 얘기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난 집요하다.”

현대 심정수. 2000년 29홈런, 2001년 18홈런을 쳤다. 자신의 타격을 고집했다. 김 코치는 더 고집이 셌다. 신경전이 계속됐다. 결국 코치가 이겼다. 심정수가 변화를 받아들였다. 이후 마음을 열고 덤벼들었다. 그 집념은 대단했다. “훈련 때 커다란 페트병의 물을 다 마실 정도로 한번 스윙을 하면 끝까지 갔다”고 김 코치는 기억한다. 2002년 46홈런, 2003년 53홈런으로 삼성 이승엽과 다툰 홈런레이스는 그렇게 나왔다. “선수마다 타격의 개성이 있다. 그 장점을 살리면서 조금만 도와주면 선수는 훨씬 좋아진다. 선동열 감독이 삼성 시절 어떻게 투수를 조련했는지 애리조나 캠프에 갔을 때 물어본 적이 있다. 선 감독의 얘기도 그랬다.”

1987년 MBC 청룡 선수 김용달. 동아일보DB
1987년 MBC 청룡 선수 김용달. 동아일보DB

○보험회사 사장에서 타격코치로!

1982년 MBC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중앙대 4번타자 출신. 선수로서 실적은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313경기에서 타율 0.259, 12홈런, 71타점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1988년이었다. “김상훈이라는 좋은 후배가 들어와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에 막혀 있던 지도자의 문이 열린다는 소문도 있었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고 싶어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막혔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사업을 했다. 보험대리점이었다. 현대해상이었다. 서울 퇴계로에 사무실을 냈다. 성공했다. 프로야구 출신이라는 덕을 봤다. 여기저기서 보험 의뢰가 몰렸다. 한때 현대해상 보험영업소 가운데 실적이 전국 1∼2위를 다퉜다. 돈도 벌었다. 그때 백인천 감독이 “함께 하자”고 했다. 고민했다. “참 묘했다. 그 제안 이후 갑자기 보험 일에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MBC 코치가 됐는데 팀이 LG로 넘어갔다. 백 감독이 타격코치로 뽑은 이유가 있었다. 코치는 근면하고 성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면에서 스타플레이어 출신보다는 성실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성실했다.

2000년 현대 유니콘스 타격코치 김용달. 동아일보DB
2000년 현대 유니콘스 타격코치 김용달. 동아일보DB

○코치 첫해 우승, 타격이론을 세운 LG 시절

1990년 LG는 백인천 감독의 배꼽타법을 앞세워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체중을 뒤에 두고 배꼽에서 친다는 기분으로 하는 스윙이다. 코치 김용달은 일본프로야구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백 감독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매일 경기 뒤 수작업으로 상대 투수들의 피칭 내용을 기록했다. 직구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을 일일이 손으로 그려가며 기록하다보니 투구패턴은 물론 경기를 보는 눈이 생겼다. 매일 경기 전 미팅에서 투수공략방법을 설명했다. LG 전력분석의 바탕이 됐다.”

1992년 백 감독이 물러나고 이광환 감독이 왔다. 1993년 2군 타격코치가 됐다. 이때 많은 공부를 했다. 자신의 타격이론을 정립한 시기였다. 닥치는 대로 타격 관련 책을 읽고 동영상을 봤다. 당시 한국을 대표하던 이순철 김성한 장종훈 이정훈 등의 스윙을 연구했다. 잘 치는 타자들의 공통적인 동작이 보였다. 그때부터 공을 기다리지 말고 앞에서 치는 김용달의 타격이론이 나왔다. “‘앞’은 타자가 스트라이드한 발의 무릎이 될 수도 있고, 홈플레이트 30cm 부근일 수도 있다. 느끼는 감각은 선수마다 다르다. 중요한 것은 공을 때리는 포인트다. 플레이트 앞에서 공과 배트가 90도로 만나야 한다. 센터를 기준으로 이 각도를 유지해야 좋은 타구를 만들 수 있다.”

1994년 1군으로 올라왔다. 구리 2군에서 훈련할 때 무척이나 열성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던 모습을 본 구본무 구단주가 총애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1994년 김재현 서용빈 유지현과 함께 루키 3총사 신화도 만들었다. 박종호 이종열 등 스위치 타자의 탄생 때도 함께했다. 주가가 올랐다.

2000년 대광고 선배 김재박 감독의 요청에 현대행을 택했다. 현대가 1998년 첫 우승 이후 3차례 더 우승하는데 함께했다. 2007년 LG로 컴백했지만 2009년 김재박 감독의 실패와 함께 유니폼을 벗었다.

○또 한번의 야인생활,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특징을 보다

2010년 미국으로 갔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를 살폈다. 30개 팀의 훈련을 지켜봤다. 야구의 새로운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겉에서 스쳐가듯 보는 훈련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의 진짜 모습을 체험했다. “현대 시절 7년간 브래든턴에서 캠프를 하면서 피츠버그의 훈련을 봤다. 메이저리그의 훈련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겉만 알았다. 현대가 훈련할 때는 재활선수나 일찍 합류한 투수가 와서 슬슬 몸을 푸는 것이었다. 진짜 훈련은 우리가 떠난 뒤에 했다. 기본기에 충실한 훈련에 놀랐다.”

매니 라미레스. 본능적으로 야구를 하는 선수로만 알았다. LA 다저스에서 본 타격훈련은 이런 선입견을 깨트렸다. “티를 스트라이크존 바깥에 놓고 쳤다. 낮은 공, 높은 공에 이어 안쪽도 낮은 공, 높은 공 순으로 쳤다. 모든 스윙을 일일이 체크하는데 그 치밀함에 놀랐다.”

앨버트 푸홀스의 훈련도 그랬다. “센터에서 우중간으로 밀어치는 것에 집중했다. 프리배팅 때 우리처럼 타구를 강하게 멀리 날리려고 하지 않았다. 스윙 궤적을 일일이 체크해가며 살살 치면서도 기본을 반복했다.” 추신수의 훈련도 봤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누구보다 먼저 클럽하우스의 문을 열고 홀로 훈련하는 성실함을 클리블랜드는 최고로 쳤다고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잘 치는 타자 100명의 스윙을 분석했더니 투수가 공을 놓는 순간부터 2∼3m까지만 보고 그 이후는 공의 궤적을 예상해 스윙한다고 했다. 타자가 공을 볼 수 있는 거리는 자기 몸에서 1.6m 앞까지라고 한다. 야구는 갈수록 발전한다. 쉬면서 메이저리그 훈련장을 찾는 이유였다.”

야인으로 지내며 타격이론 책(용달매직의 타격비법)도 냈던 20년 타격코치의 결론은 이랬다. “방망이는 선수가 친다. 내가 할 일은 선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경기에 집중하고 코치에 의존하지 말라고 한다. 스스로 믿고 타격을 하면 창조적인 미래가 나온다.”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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