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현희 “이 눈물 지우려 4년을 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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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7일 07시 00분


아름다운 미소, 그러나 올림픽을 향한 그녀의 칼끝은 매섭다. 펜싱국가대표 남현희는 2008베이징올림픽 여자 플뢰레 결승에서 종료 4초를 남겨두고 역전패했다. 그리고 4년 동안 그녀의 칼끝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스포츠동아DB
아름다운 미소, 그러나 올림픽을 향한 그녀의 칼끝은 매섭다. 펜싱국가대표 남현희는 2008베이징올림픽 여자 플뢰레 결승에서 종료 4초를 남겨두고 역전패했다. 그리고 4년 동안 그녀의 칼끝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스포츠동아DB
베이징 올림픽 결승 4초 남기고 역전패
통한의 은메달 설욕위해 4년간 구슬땀
물오른 블레이드 센스에 노련미 더해져
작년 결혼후 심리 안정도…금메달 예감


2012런던올림픽까지 이제 딱 50일이 남았다. 태릉의 하루는 더 분주해졌다. 결전의 날이 다가올수록 선수들의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이제는 마지막 몸만들기뿐만 아니라 심리적 부분을 추스르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할 시기. 올림픽 무대를 한번 밟아본 선수는 그래서 더 유리하다. 4년 전의 경험이 있기에, ‘최후의 50일’ 동안 상대적으로 쫓기지 않을 수 있다. ‘한국 펜싱의 대들보’ 남현희(31·성남시청) 역시 차분하게 칼끝을 가다듬고 있다.

○4초의 아쉬움을 지우기 위해 땀 흘린 4년

2008베이징올림픽 여자 플뢰레 결승전. 남현희의 상대는 ‘펜싱여왕’ 발렌티나 베잘리(38·이탈리아)였다. 남현희는 불패의 여신을 만나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1회전에서 0-3으로 뒤지다 2회전에서 3-3까지 따라갔다. 이어 3회전 41초를 남기고 5-4로 역전에 성공했을 때는 금메달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5-5 동점 이후 경기 종료 4초를 남기고 통한의 공격을 허용했다. 최종 결과는 5-6 역전패.

당시 은메달을 목에 건 남현희는 “최선을 다했다.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4년 뒤를 기약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4초의 아쉬움을 씻기 위해 4년간 구슬땀을 흘렸다. “그 때는 제가 너무 덤비기만 했던 것 같아요. 베잘리에게 허용한 마지막 점수도 급하게 나가다가 역습을 당한 것이었어요. 제가 평소에는 정말 생각이 많은데…. 막상 경기 때는 과감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참으면서 경기를 운영한다고 할까? 그런 점들이 많이 좋아졌어요.”

○경지에 오른 블레이드 센스(Blade sense)

남현희(세계랭킹 3위)는 2005∼2006시즌 세계랭킹 2위에 오른 이후 무려 7시즌 동안 세계랭킹 3위 이상의 성적을 유지했다. 이 기간 세계 정상권을 유지한 선수는 남현희를 제외하면 베잘리 정도가 유일하다. 이런 경험들은 남현희의 블레이드 센스를 향상시켰다. 블레이드 센스란 상대의 검과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상대 공격을 예측하는 감각을 말한다.

이제는 상대의 미세한 동작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칼끝이 자신을 겨누는 각도도 보인다. 나가야 할 타이밍과 참아야 할 순간을 육감적으로 잡아낼 수 있게 됐다. 그것이 4년 전보다 강해진 점이다. 런던올림픽에서 남현희의 라이벌은 베잘리를 비롯해 엘리사 디 프란시스카(세계랭킹 2위), 아리아나 에리고(세계랭킹 5위) 등 이탈리아 선수들. 남현희는 노련함으로 이탈리아 3총사를 무력화시킬 계획이다. 비단 개인전뿐 아니라 전희숙(28·서울시청), 오하나(27·성남시청) 등과 호흡을 맞출 여자 플뢰레 단체전도 메달 진입을 노려볼 만하다.

○50일 동안 하루를 2∼3일처럼

“4년 전 이맘때는 운동을 하고 있지 않으면 항상 불안했어요. 그래서 펜싱을 안 하는 시간에도 러닝머신 위를 뛴다든지, 항상 무엇인가를 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훈련이 양보다 질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무조건’이 아니라 ‘왜?’라는 물음을 항상 가슴에 담고 땀을 흘린다. “하던 대로만 해도 4강에는 갈 수 있을지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명확히 세우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녀에게 질적 훈련은 더 중요하다.

대한펜싱협회는 4월 말 여자플뢰레대표팀의 새 지도자로 최명진 코치를 선임했다. 최 코치는 남현희에게 기술적 조언들을 아끼지 않고 있다. “새로운 기술들에 대한 시야가 열리는 느낌이에요. 5월 SK텔레콤 국제그랑프리 때부터 감이 오기 시작했어요.” 최근 이탈리아 선수들은 아스트리드 구야르(프랑스·세계랭킹 7위)에게 연신 패하고 있다. 반면 남현희는 구야르에게 강하다. 올림픽에서도 구야르가 남현희의 도우미 역할을 해준다면 금상첨화. 최근 남현희는 체육과학연구원 김태완 박사에게 “구야르의 경기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구야르를 분석해 이탈리아를 꺾을 비책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남현희는 “50일 동안 하루를 2∼3일처럼 살겠다”며 웃었다.

○남편, 어머니, 시할머니 정성…가족은 나의 힘

남현희는 1년이면 약 2∼3개월을 해외에서 생활한다. 랭킹 관리를 위해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시차적응을 하다 1년이 다 지나간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 고된 시간을 버티는 힘은 가족에게서 나온다. 남현희는 2011년 11월 사이클 선수 공효석(26·금산군청)과 결혼했다. 5세 연하의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자상하기로는 오빠 못지않다. “저는 태릉에, 남편은 금산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자주 못 만나요. 하지만 가끔 집에 갈 때면 피곤한 저를 위해 설거지까지 해놓을 때가 있어요. 얼마나 고마운지….”

남현희의 손가락에는 시할머니로부터 받은 반지가 끼워져 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시할머니가 손자며느리를 응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손목에는 불교 신자인 친정어머니가 준 염주팔찌까지…. “올림픽 때도 이 반지랑, 팔찌를 하고 나가려고요. 저를 응원하시는 분들의 염원이 닿았으면 좋겠어요.”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내린다고 한다. 다른 두 종교의 신들이 ‘런던의 남현희’를 지킨다. 올림픽 이후 그녀는 아기를 가질 예정이다. 베잘리 역시 2004아테네올림픽 이후 아기를 낳고 복귀한 적이 있다. 2012년은 남현희에게 운동과 사랑의 결실을 모두 맺는 해. 부담보다는 기대감으로 충만하기에, 태릉으로 향하는 남현희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태릉|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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