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길을 묻다]<1>김인식 KBO 기술위원장

  • 동아일보

“진정한 리더? 참고 다독이며 전체를 보라”

《 혼돈의 시대다. 편 가르기와 상대방 헐뜯기가 만연한 세상이다. 중심을 잡아줄 리더의 존재가 절실하다. 온갖 시련을 딛고 일어선 어른들의 말 한마디는 훌륭한 방향타이다. 야구 축구 농구 등 각 종목의 원로들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리더의 덕목과 후배가 가야 할 길’을 들어본다. 》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 기술규칙위원장은 “가슴이 따뜻한 리더(감독)가 성공한다”고 했다. 선수를 꾸짖기보다 어깨를 다독이며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운동이든 공부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게 리더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DB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 기술규칙위원장은 “가슴이 따뜻한 리더(감독)가 성공한다”고 했다. 선수를 꾸짖기보다 어깨를 다독이며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운동이든 공부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게 리더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DB
‘1992년 8월. 오후 11시에 홀로 숙소에 왔다. 불 꺼진 마루 소파에 앉았다. 오늘도 졌다. 경기 초반에는 앞섰지만 막판에 승부가 뒤집어졌다. 뒷심이 부족했다. 선수들은 승리보다 패배에 익숙했다. 수십 번 이날 경기를 되새겼다. 잠시 고민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오전 4시가 됐다….’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규칙위원장(65)의 20년 전 이야기다. 그는 당시 쌍방울 창단 감독이었다. 1991년 팀을 6위에 올려놓으며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최하위로 추락했다. 41승 84패 1무에 승률 0.329의 초라한 성적표. 힘든 시기였지만 야구에 대해 가장 공부를 많이 한 시간이었다.

김 위원장은 2009년 한화 감독 시절 또 옷을 벗었다. 46승 84패 3무에 승률 0.346으로 최하위. 하지만 그는 박수를 받으며 떠났다. 그해 마지막 경기였던 9월 25일 삼성과의 안방경기에서 2-1로 이긴 뒤 외야에는 ‘감독님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그에게 큰절을 올렸다. 끝까지 믿어준 야구스승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김 위원장은 프로야구 감독으로 17년, 코치로 4년을 보냈다. 한국시리즈 우승과 준우승을 두 번씩 이뤄 냈다. 감독 통산 980승(1032패 45무)을 기록했다.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대표팀을 맡아 준우승으로 이끈 명장이었다.

김 위원장을 7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부근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과 함께 야구 관련 책을 준비 중”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다시 야구 유니폼을 입고 20승을 더해 1000승을 채우고 싶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야구의 매력은 이랬다. “경기에 졌을 때는 고뇌에 빠지지만 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순간의 희열은 짜릿하다. 인생의 희로애락과 닮았다.”

○ 리더의 자격

1986∼89년 해태 수석코치 시절에는 패배라는 걸 몰랐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으니까…. 하지만 이듬해 쌍방울 감독을 맡은 뒤에는 정반대였다. 역전패가 많았고 연패로 이어졌다. 그때 이기는 것만큼 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조직이든 리더(감독)는 힘든 자리다. 모든 걸 책임져야 하고 많이 참아야 한다. 선수가 잘못했다고 바로 혼내면 안 된다. 어깨를 다독여야 한다. 뜨거운 열정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한다. 믿고 배려해야 선수도 따른다. 리더는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남이 알아줘야 진정한 리더다.

○ 초보 감독, 서두르지 말라

처음 지휘봉을 잡은 감독들은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기는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투수를 더 기용한다. 1승에 조급한 탓이다. 감독이 걱정하고 염려하면 선수들은 불안해진다. 경기에 집중하기 어렵다. 감독은 코치에게 기술적인 것을 맡기고 선수단 전체를 봐야 한다.

○ 야구선수의 의무

감독 17년 동안 시무식 때마다 선수들에게 강조한 게 있다. ‘시간 약속을 지켜라’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야구 선수는 잘하면 돈과 명예를 얻는다. 그러나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한순간에 모든 걸 잃는다. 모든 사람이 주시하는 공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 2009년은 위대한 도전?

겉보기엔 화려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WBC 결승에서 일본과 연장전까지 가며 잘 싸웠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소속팀 한화의 사령탑으로서도 김태균이 부상으로 빠지는 등 악재가 겹쳤다. 모든 게 내 잘못이지만 팀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웠다.

○ 이승엽과 김태균 박찬호

(이)승엽이는 일본에서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에 약점을 보였지만 여전히 강타자다. 그는 2000년 시드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보여준 것처럼 승부처에 강했다. 타율이 낮아도 결정적일 때 잘하면 된다. (김)태균이도 타격 재능이 있는 선수니까 제 몫을 할 거다. (박)찬호는 지난해 4월처럼 구석구석을 찌르는 제구력이 살아난다면 국내에서도 통할 거다. 다만 투구 수가 60개가 넘어가면 구위가 떨어지는데 체력 보완이 관건이다. 찬호가 “국내에서 마지막 봉사를 한다”고 했는데 그건 아니다. 프로답게 제대로 던지도록 준비해야 한다.

○ 제10구단은 필수

제9구단 창단은 제10구단을 염두에 두고 계획한 것이다. 기존 구단에서 선수 수급을 문제 삼는데 서로 도와야 한다. 거기에 맞는 선수 몸값을 받으면 된다. 중고교 야구팀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프로야구 진출의 문이 넓어져야 꿈나무도 산다. 아마추어 없는 프로야구의 미래는 어둡기 때문이다.

○ 고 최동원과의 추억

한화 감독으로 부임한 뒤 최동원을 불렀다. 평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최고의 투수였기에 잘할 것 같았다. 마운드 위에서의 강한 인상과는 달리 부드럽고 예의바른 친구였다. 2군 감독을 맡아 후배들을 책임감 있게 이끌었다. 지난해 8월 그가 전화를 걸어와 “건강하시냐. 나는 건강하게 지낸다”고 했다. 자신이 더 아프면서 남 걱정을 하더라. 그런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나 가슴 아팠다.

김 위원장은 올해 프로야구가 그 어느 해보다 재미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이승엽을 보강한 삼성이 지난해에 이어 우승 후보 1순위다. 김태균 박찬호 송신영이 보강된 한화는 돌풍의 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KIA 롯데 SK 두산이 4강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700만 관중 시대가 열릴 거라는 얘기였다.

김 위원장은 배문중 2학년 때인 1961년 공을 잡은 뒤 올해로 야구인생 52년을 맞았다. 그는 “야구는 기능직이다. 야구에 ‘퇴직’ ‘세대교체’는 없다. 아는 게 야구밖에 없어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할 것”이라며 웃었다. 여전히 그의 마음은 야구장을 향하고 있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 김인식은?


△출생=1947년 5월 1일 △학력=배문고 졸업 △경력=1965∼1972년 크라운맥주-한일은행 투수, 1973∼1977년 배문고 감독, 1978∼1980년 상문고 감독, 1982∼1985년 동국대 감독, 1986∼1989년 해태 수석코치, 1991∼1992년 쌍방울 감독, 1995∼2003년 두산 감독, 2005∼2009년 한화 감독 △주요 성적=1995,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0, 2006년 준우승. 국가대표 감독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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