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육상]볼트, 충격의 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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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8일 21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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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미터 결승 부정 출발 판정 후 아쉬워하는 우사인 볼트. 왼쪽은 우승자 블레이크 선수
100미터 결승 부정 출발 판정 후 아쉬워하는 우사인 볼트. 왼쪽은 우승자 블레이크 선수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가 육상 팬들을 또 놀라게 했다. 이번에는 신기록이 아니라 실격이었다. 세계를 감전시킨 '번개 볼트'가 달구벌에서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충격이었다.

볼트는 2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선에서 출발 총성이 울리기 전에 5번 레인의 스타팅 블록을 박찼다. 볼트의 출발반응 속도는 -0.104초. 논란거리조차 될 수 없는 예측 출발이었다.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그는 얼굴 가득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답답한 듯 웃통을 벗은 채 돌아다니다 애꿎은 벽을 두드렸다. 전광판을 통해 자신의 실격이 발표되자 "누구야(Who is it?)"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날 대구스타디움은 볼트를 위한 콘서트장 같았다. 경기 전까지는 그랬다. 4만 여명의 관중들은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환호했다. 그럴수록 그는 더 신바람을 냈다. 볼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100m 우승부터 늘 화제의 중심이었다. 결승선을 20m 앞두고 양팔을 벌리며 관중석을 쳐다보는 여유를 부렸고 골인 직전에는 가슴을 두드리기까지 했다. 그러고도 당시 세계 신기록인 9초69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우승 뒤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특유의 세리머니를 펼치며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자신이 신었던 황금빛 운동화를 들어 보이며 후원사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볼트는 이날 선수 소개 때는 양 옆의 월터 딕스(미국)와 요한 블레이크(자메이카)를 손가락으로 가리킨 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내가 1등이라는 제스처를 했다. 관중은 그런 볼트를 지켜보며 즐거워했지만 그의 콘서트는 막도 올리지 못했다.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 100m, 200m, 4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볼트는 2개 대회 연속 3관왕이 유력했지만 순간의 실수로 물거품이 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포함해 3개 메이저대회 연속 3관왕이라는 진기록을 세울 기회도 날아가 버렸다.

100미터 결승 부정 출발 판정 후 아쉬워하는 우사인 볼트. 왼쪽은 우승자 블레이크 선수
100미터 결승 부정 출발 판정 후 아쉬워하는 우사인 볼트. 왼쪽은 우승자 블레이크 선수
결선까지 볼트는 우승을 예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볼트는 지난 주 200m 훈련 도중 트랙 위에 누운 채 발목을 만지며 코치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했다. 그리고는 왼 다리를 절뚝거리며 훈련을 중단했다. 볼트는 아킬레스 힘줄 부상과 허리 통증으로 지난해 8월 이후 대회에 나가지 않다가 5월에 복귀했다. 이를 지켜본 언론들이 볼트의 부상이 심각한 것 같다고 보도 했지만 그는 27일 열린 예선에서 중반 이후 스피드를 크게 줄이고도 전체 55명 가운데 가장 빠른 10초10을 기록하며 우려를 불식했고, 28일 준결선에서도 10초05을 끊으며 2조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볼트는 공식 인터뷰를 거절한 채 경기장을 떠났다. 공동취재구역도 지나지 않고 출구 대신 입구를 통해 빠져 나갔다. 그 과정에서 만난 외신기자에게는 "눈물을 기대했느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선수촌으로 함께 이동한 볼트의 동료들은 "볼트가 난 믿을 수 없다"를 연발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볼트가 크게 실망하진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볼트가 출전하는 남자 200m는 다음 달 2일 예선이 열린다.

대구=이승건기자 why@donga.com
대구=김동욱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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