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신인, 마지막 3홀의 기적… 브래들리, 5타 뒤지다 극적인 동타후 연장 역전승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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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첫 도전서 PGA챔피언십 포옹… 시즌 2승

그는 인구 3200명에 불과한 미국 동북부 버몬트 주의 소도시 우드스톡에서 자랐다. 엄동설한이 길어 골프는 1년에 5개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스키장이 놀이터였다. 주 대표로 뽑혔던 그의 목표는 겨울올림픽 출전이었다. 집에선 반대가 심했다. 아버지는 두 군데 골프장의 헤드 프로였다. 고모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통산 31승에 빛나는 명예의 전당 회원 팻 브래들리다. ‘겨울 스키, 여름 골프’를 병행하던 그는 12세 때 스키 선수의 꿈을 접었다. 스키 리조트에서 진눈깨비를 맞으며 추위에 떨다 보니 골프가 훨씬 따뜻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골프 집안의 남다른 유전자와 적극적인 지원 속에 한 우물을 판 그가 처음 출전한 메이저 대회에서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15일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 애슬레틱 클럽(파70·7467야드)에서 끝난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키건 브래들리(25·미국). 세계 랭킹 108위인 그는 합계 8언더파로 제이슨 더프너(34·미국)와 동타를 이룬 뒤 3개 홀 연장 승부에서 이겼다.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데뷔한 그는 5월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거둔 뒤 2번째 승리를 메이저 타이틀로 장식했다. 우승 상금은 144만 달러. 세계 랭킹은 타이거 우즈(33위)를 추월해 29위까지 점프했다. 메이저 대회 첫 도전에서 챔피언이 된 것은 1913년 프랜시스 위멧(US오픈), 2003년 벤 커티스(브리티시오픈) 이후 사상 세 번째다. 롱 퍼터를 사용한 첫 메이저 챔피언으로도 주목받았다.


이날 15번홀(파3)에서 브래들리는 러프에서 한 어프로치샷 실수로 공을 물에 빠뜨리며 트리플 보기를 해 선두 더프너에게 5타나 뒤졌다. 우승의 꿈은 연못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16번홀 버디에 이어 17번홀에서 10m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다. 더프너가 15, 16, 17번홀에서 잇달아 보기를 해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브래들리는 “실수 하나로 모든 걸 잃을 수 없었다. 이게 꿈이 아니길 바란다”라며 울먹였다. 스키는 부상 위험 탓에 프로 골퍼에게는 상극으로 불리지만 브래들리에게는 슬로프를 질주하며 몸에 밴 강한 승부 근성과 집중력이 자산이었다.

우승 후 브래들리는 여동생과 10개월 된 조카, 그리고 어머니 등과 얼싸안았다. 오랜 무명 생활로 2년 전 은행 잔액이 1000달러밖에 남지 않아 투어 생활을 중단할 뻔했던 그를 위해 가족들이 돈을 모아 경비를 지원했다. 브래들리의 할머니는 딸인 팻 브래들리가 우승하면 늘 축하의 종을 쳐 동네 사람들에게 알렸다. 환한 미소를 짓는 이들 가족의 가슴에도 승리의 종이 울려 퍼졌다.

역대 최장인 메이저 대회 6연속 무관에 그쳤던 미국 골프도 자존심을 되찾았다. 2004년 투어 데뷔 후 우승이 없는 더프너는 통산 148번째 대회에서 품 안에 들어왔던 대어를 놓치며 땅을 쳤다. 올해에만 두 번째 연장 패배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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