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이 만난 사람] 이갑진 “승부조작과 장기전…끝까지 뿌리 뽑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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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3일 07시 00분


곪은 부위를 못본척 해 암덩이처럼 커져
도려 내지 못하면 동남아 축구처럼 몰락
팀에서 부터 ‘클린풋볼 운동’에 동참해야
승부 조작 조사 필요하면 인터폴과 공조

이갑진 비리근절위원장(왼쪽)이 스포츠동아 최현길 부장과 만나 향후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깨끗한 한국축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트위터 @binyfafa
이갑진 비리근절위원장(왼쪽)이 스포츠동아 최현길 부장과 만나 향후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깨끗한 한국축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트위터 @binyfafa
리그 승부조작은 한국축구의 존폐를 걱정할 만큼 엄청난 사건이었다. 현직 프로 선수 5명이 구속 기소됐고, 7명이 불구속 기소되는 등 모두 12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검찰은 정규리그에서도 승부조작의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승부조작의 회오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동안 곪은 부위를 보고서도 쉬쉬했기에, 암을 발견하고도 애써 외면했기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축구계는 비리척결에 사활을 걸었다. 그 일환으로 비리근절위원회를 발족시켰다. 10일 첫 회의를 가졌다. 비리에 관한 모든 매뉴얼을 만들고 필요하다면 조사도 하겠다는 취지다.

위원장인 이갑진(67) 대한축구협회 고문을 이날 축구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자식 잘못 키운 아비와 같은 심정”으로 이 일을 맡았다며 “비리와의 전쟁을 통해 ‘클린 풋볼 운동’을 해 나가겠다”고 했다.

-축구 관계자 입장에서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나.


“암은 우리가 모르게 자라난다. 비리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도 상당한 지속성이 있다. 단번에 생긴 것은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부패, 그간 부정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도덕적 해이, 그런 게 존재했기 때문에 터진 사건이다.”

-축구의 존폐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국민들이 축구를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느낀다면 그건 사행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프로레슬링이 돈으로 승패를 산다는 인식이 심어지면서 인기가 팍 죽었다. 동남아 축구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축구 강호였는데, 어느 순간 승부조작이 벌어지면서 인기가 떨어졌다. 몸 전체에 암이 퍼지면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작은 부분까지 세밀히 치료해야 한다.”

-2008년 당시 K3의 잘못을 완전히 도려내지 못한 것이 화근 아닌가.

“경보음이 그 때 울렸다. 그 때 내가 상벌위원장으로 그 일을 했고, 필요한 조치들을 했다. 상벌위원장을 떠난 직후에 그냥 괜찮은 듯 보였는데, 문제가 생겼다. 일반인들이 병이 나으면 금세 잊어먹듯이 잠시 잊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잘못을 저지른 선수에 대해) 묵시적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고, 선수를 방출시키는 경우도 있다. 잘못된 점이 많았다.”

-비리근절위원회가 하는 일은.

“비리 근절을 거론할 때 어디까지 비리로 볼 것이냐 정의부터 쉽지 않은 작업이다. 비리근절위원회를 상설 기구로 운영하려면 기능과 수행, 구성원들의 권한과 책임 등부터 설정해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문패부터 달았다.

승부조작이 터지고 나니까 중요한 부분들을 해결하려고 많은 얘기들이 거론됐다. 현재 정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유형을 보면 선수 매수에 의한 승부조작이 있고, 선수 자체가 자발적으로 불법 베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감독 간의 합의 하에 이뤄지는 조작이 나올 수도 있고, 심판을 통해 이뤄질 수도 있다.

다양한 유형들이 존재할 것이다. 앞으로 이런 세밀한 부분들까지 정비해야 한다. 축구와 관계될 수 있는 모든 유형들을 찾아볼 생각이다. 우리가 가진 경험적인 부분에 대한 사례집들을 만들고, 지도자부터 각성토록 만들겠다. 선수들도 마찬가지고. 위원회의 업무는 바로 정의부터 세우고, 유형 찾는 일부터 시작한다.”

-어떻게 구성되나.

“일할 수 있는 필수 인원이다. 위원장, 부위원장(하기복 변호사)과 위원들로는 협회 부회장 1명, 프로와 실업, 대학연맹 한 사람씩이다. 또 외부 인사로 법무부 검사 한 분을 모실 생각이다. 한 분은 30∼40대 초반의 사이버 전문가(요즘 세대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또 조사 전문가(감사 기관이 될 수도 있기에), 그렇게 7∼8명 정도다.

부위원장이 협회 이사인 30대의 하 변호사인데, 위원은 부회장이다. 철저히 업무 중심으로 가겠다는 의지다. 타이틀은 전부 무시하겠다. 여기에는 어디까지나 전문가만 있다.”

-구체적인 대책마련은 어떤 것인가.

“예를 들어 선수 매수 유형이 있다면, 유형별로 나눠서 카테고리를 6∼7가지 정도 만든다. 먼저 감시와 적발이고, 두 번째는 신고와 포상, 세 번째 제재 과제다. 네 번째는 인성 교육 , 다섯 번째 선수 처우, 여섯 번째 국가기관 협력, 일곱 번째 국제 공조 과제다.

위원회가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면 실행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 실행은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여러 가지 부분들까지 세밀히 식별해서 정리하겠다. 카테고리 별로 과제가 나오면 계층이 나올 것이다. 같은 부분을 놓고 프로연맹, 축구협회 등이 해야 할 업무가 나온다. 단발성은 제한하겠다. 단기전은 필요 없다. 지구적인 싸움을 할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안 된다.”

검찰 조사가 앞으로 얼마나 번질지 모른다. 그래서 수사 추이도 살펴야 한다. 하지만 그는 팀(클럽)을 우선 살펴보겠다고 했다. 승부조작을 막기 위해서는 팀이 먼저 움직여야하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관점과 마인드를 먼저 바꿔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팀에서부터 ‘클린 풋볼’ 운동이 나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사람이 변해야 제도도 바뀐다”고 했다.

-국제공조가 가능한가.


“국내 승부조작 사태에 대해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인터폴을 활용해서 언제든 국제 공조가 가능할 것이다. 일본, 중국 등과의 연계는 아직 안 하고 있지만 대한축구협회 차원에서 조만간 이 문제를 놓고 실무자 회의를 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얘기했다. 가난하지만 정직함이 승리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배고프면서도 축구 사랑 하나로 뛴 선배들의 정신, 순수함, 이런 초심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우리 축구가 희망적인 게 4가지가 있다. 먼저 인력 인프라, 맨 파워가 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축구에 대한 열정, 세 번째로 자산이 있다. 네 번째는 아직도 우리 축구를 사랑해주는 국민들이 있다.

나쁜 놈을 쳐다보기보다는 문제를 제대로 발본색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머리 좋고 부정적인 사람이 조직에서 가장 필요 없는 사람이다. 어수룩해 보여도 실낱같은 희망만으로 달려들 수 있는 순수함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긍정의 심정으로 바라볼 생각이다.”

그는 썩은 사과 한 개 때문에 한 박스를 몽땅 망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사람이 변하고, 제도가 변하면서 가장 깨끗한 한국축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정말 비싼 수업료를 낸 만큼 모든 축구인들이 비리와의 전쟁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갑진 축구계 비리근절위원은 누구?

○출생 : 1944년 3월26일/ 경남 진주
○학력사항 : 진주고-해군사관학교(예비역 중장)
○경력사항 :
-1998년 해병대 사령관
-2001∼09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2007∼09 대한축구협회 상벌분과위원장
-2002년 한일월드컵 국가대표팀 단장
-현재 해병대 전략연구소 부소장 및 한동대학교 초빙교수

[스포츠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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